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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Sep 27. 2023

난 내가 정말로 괜찮아 진 줄 알았어

항우울제 이야기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1

3월에 안좋은 일을 한 번 시도했었고, 그 이후로 조금씩 나아졌다. 아니 나아진 정도가 아니라 인생이 이렇게까지 평안할 수 있을 까 (재미는 좀 없었지만) 신기해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래 조금 재미없는 것 치고는 나머지는 정말 다 괜찮았다. 특별히 좋은 일은 없었지만,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기에 감사하고 만족했다.




#2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다.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닌다.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이게 약 때문인지, 정말 제가 좋아진 것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3월에 그랬을 때에도 약을 줄이면서 상태가 점점 안좋아지고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선생님은 답했다.


"아니에요, 약만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어요. 온다님이 노력해서 정말 좋아진거예요"




#3

좋은 상태가 또 5개월 넘게 유지되었다. 이제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더할나위 없었다. 재미는 조금 없지만 삶에 만족한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의사선생님은 아주 조그만 약을 하나만 빼보자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항우울제는 혈압약과 비슷하다고 한다. 먹는다고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처럼 서서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아주 소량이라고 했고, 사실 항우울제가 아닌 안정제로 잘못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갑작스런 변화도 아니었다. 서서히 나도 모르게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 가라앉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냥 창문 난간에 앉아서 뒤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꿈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죽고 싶다고 말했다. 꿈속의 누군가가 "그럼 그냥 죽지 그래요?"라고 하니, 그 와중에도 또 살고 싶었는지  "좀 아플거같고, 뒤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무서워요"라고 대답한 것이 기억난다.




#4

그저께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혹시 약물의 변화 때문인지 묻고 싶었다. 안정제를 뺀 줄 알았는데, 아주 소량의 항우울제를 뺐었단다. 이미 충분한 수치의 약을 먹고 있는데 부가적으로 먹었던 것이라 큰 영향이 없어보이고, 상태도 좋아보였는데 다시 넣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이게 벌써 세 번째인가. 상태가 좋아졌다 생각해서 약물을 줄였을 때 나는 늘 물 속에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으로 살았고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좋아졌다고 생각한 게 진짜로 좋아진 것이 아니라 약 때문이었다니. 절망이다. 나는 노력했고, 열심히 살고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버틴 것 같다. 그런데 그냥 항우울제의 작용일 뿐이었나보다.




#5

예전에 풀배터리 검사를 할 때에도, 그 전에 상담을 할 때에도 나는 소아 때부터 집안 환경과 양육방식으로 인해 소아 우울증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간에는 책임감과 나름의 집념으로 그 우울을 누르며 살아왔지만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자력으로 누르지 못하고 튀어나온 것 뿐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우울은 내 일상이었다. 딱히 좋은 날이 있는 것이 아니면,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아니면 나는 늘 이렇게 물속에 가라앉아 숨을 참고 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게 디폴트인 감정이었다.


그런데 약을 먹고 보통의 기분이 일상이 되는 것을 느껴보고 나니, 다시 그렇게 물 속에 가라앉는 느낌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서 걸어다니는 느낌으로 내 몸 하나 이끄는 것 조차 힘들다. 




#6

어제 건강검진에서 스트레스와 피로도가 역대 최저로 나왔다. 지금처럼만 지내면 된단다. 수면제를 먹기 때문에 잠을 잘 자고, 항우울제를 먹기 때문에 안정이 되어있다. 나는 이렇게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 약을 먹고 웃는 나는 가짜가 아닐까. 내 웃음과 내 모든 활력은 이렇게 만들어낸 것으로만 살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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