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울증에 대하여
까페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들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내 꿈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저런 것들을 적어나갔고, ‘결국에는 다 잘될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의 말도 써 봤습니다. 이제부터는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씩 가져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일단은 남편의 말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운전면허도 따고, 요가를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며 굳이 정을 붙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은 도시에서 ‘커피 한잔하실래요’ 라는 말 한마디 건넬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몸을 움직일 때라는 생각과 함께요.
가장 두려웠던 것은 생판 모르는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다들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면허를 딴다든지, 운동을 하기 위해 아이를 잠깐씩 맡기는 것을 조금은 신기하게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아마 철없는 엄마처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단 움직여야만 했으니까요.
운전면허를 따고서, 처음으로 늘 걷던 바닷가를 운전하면서 오는데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이와 함께 병원이나 어딘가를 가기 위해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참 좋았습니다.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날은 온몸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몸이 정말 많이 상했나 봅니다. 단순히 팔을 쭉 뻗는 것 조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같이 모여 따뜻한 차를 마시곤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모임은 처음인지라 되도록이면 늘 조용히 듣고, 조용히 웃다 오곤 했습니다. 수업의 마지막 부분에 명상음악을 들으며 10분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 그리고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들은 묘하게도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나하나의 작은 것들이 다시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통영을 떠날 때가 되어서는 너무 아쉬워서 ‘여기에서 평생 살아볼까’ 라는 걱정도 진지하게 해봤답니다. 하지만 큰 아쉬움과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으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지만요.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같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은 그때가 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하나씩 스스로 바꿔나가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느꼈던 온갖 감정들은 누군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은 때론 햇살처럼 반짝이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처럼 출렁이기도 합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그 파도까지도 햇살에 반짝이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육아 휴직 동안의 아팠던 그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