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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련 Aug 06. 2024

[임신 15주] 내가 원했던 임신이 이게 맞아?


올해로 결혼 5년 차. 우리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가 있는 미래를 꿈꾸었다. 엄마가 되는 것은 내 인생에서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굳세게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임신 7주 차가 되던 날 이른 아침. 반려가 노르웨이로 열흘간의 출장을 떠났다. 한동안 볼 수 없을 얼굴을 끝까지 봐둬야겠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반려의 옆모습을 현관문 뒤에 기대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거의 도착했을 무렵, 눈앞이 뿌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한 두통이 밀려왔고 현관문 손잡이를 꼭 잡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는데 반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막 출장을 떠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었다. 다행히 현관문에 기대어 있었기에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었고, 이른 새벽이라 눈을 크게 감았다 뜨며 잠에 취한 듯한 표정을 흉내 내었다.

반려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지러웠다. 쪼그려 앉는 자세가 초기 임신부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곧 오심이 시작됐다. 화장실로 달려갔는지, 기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임신 후 첫 구토를 한 날이 임신 7주 차였다는 것만 또렷하다.

그날 이후로 입덧은 나날이 심해져 9주 차에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어디 입덧뿐인가. 내 생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저질 체력을 갖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한 몸 씻기가 어찌나 힘든지 샤워를 할 수 없어서 내 머리카락은 산유국이 되었고, 반려가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청소기 한 번을 돌리지 못했다. 딱히 먹은 게 없으니 식기세척기를 돌릴 일도 없었고, 쓰레기도 나오지 않아서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아도 되었다.

출장 중인 반려에게 영상 통화로 '입덧이 시작되었고, 도무지 움직일 힘이 없어서 잠만 잔다'라고 말해 두었다. 하지만 실제로 초췌한 내 몰골과 집안 꼴을 본 반려의 표정은 실로 놀라운 것을 본 표정이었다.

입덧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체력 저하로 모든 집안일은 반려의 책임이 되었다. 결혼 후 이 정도로 집안일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이상했지만, 사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도 알 수 없던 요상한 시절이었다. 7주 차부터 11주 차까지 시간이 꿈처럼 흘렀고, 내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돌아온 것은 12주 차가 지나서였다. 12주 차부터 점점 입덧이 약해졌고, 체력은 점점 돌아왔다. 절대 질 것 같지 않던 뜨거운 태양이 부드러운 석양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임신 2분기'가 시작되었다. 첫아기를 유산한 후로 내 삶에 임신과 출산의 행복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반려와 나눈 수많은 대화 중 혹시라도 우리에게 아이가 와 주지 않는다면 입양을 통해 부모가 되어 건강한 가정을 선물해 주자는 약속도 했었다. 낳아야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길러야 부모라는 것을 내 삶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점점 단단해지고 부풀어 오르는 아랫배에서 자신의 존재를 외쳐대는 아가가 느껴진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서 깜박 잊었던 '감사'의 마음을 이제는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 엄마의 최선이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 나를 잃지도, 너를 구속하지도 않는 부모가 된다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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