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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에미 더블 스택 버거

햄버거가 더 유명한 피자집, 비법은 고추장.

by 금요일 Feb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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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뒀다 네가 오면 같이 갈까 해.


같이 가면 좋겠다 싶은 식당이 있어. 아니, 나도 아직 못 가 봤지.

전부터 체크해 뒀는데 브루클린 안쪽이라 멀기도 하고 한 명은 예약도 어려워서.

나중에 같이 가지 뭐. 어? 잠깐만, 여기에도 있는데. 이게 왜 여기 있지?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토요일이었습니다. 서울에선 연일 눈소식이 들렸지만 뉴욕의 계절은 여전히 가을이었어요. 길 따라 서 있는 가로수는 여전히 노란 잎으로 풍성했고 크고 작은 공원들에 모인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웠으니 말이죠. 버거 투어에 한창 열중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구석에 모아 놓은 낙엽 더미를 보고 잘 눌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매시 패티를 떠올릴 정도로.

 레스토랑 페어팩스(Fairfax)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를 걸었습니다. 작고 예쁜 상점들과 조용한 골목. 맨해튼 중심가에선 귀한 여유와 고요를 한참 즐기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좀 있어 보니 화려함보단 낭만을 찾게 된다고, 복작대는 것 싫어하는 너도 그리니치 빌리지는 분명 좋아할 거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도 매일 버거만 먹냐는 말에 아직 가 보지 못한 버거집 얘기를 하는데 눈앞에 그 집 간판이 보였어요. 브루클린 덤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식당이 왜 여기에 있나 찾아보니 웨스트 빌리지에도 지점이 있더군요.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삼십 분 전 버거를 먹었다는 걸 자각했습니다. 곧장 다음 화요일 점심 때로 테이블을 예약했어요. 그에겐 미안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나요.


소개

주소 : 35 Downing St, New York, NY 10014, United States | https://maps.app.goo.gl/Qc4TLBMQXwdfdmBr8

메뉴 : $29 (에미 더블 스택 버거, 이스트 빌리지 점) / $31 (에미 버거, 브루클린 점)

홈페이지 : https://www.pizzalovesemily.com/ | https://www.instagram.com/pizzalovesemily/


 흔하디 흔한 이름 에밀리는 셰프 멧의 아내에게서 따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의 주 메뉴는 피자입니다. 에밀리는 올리브 페퍼로니 피자 조각을 물고 있는 멧을 보면서 이 사람을 남은 평생 동안 좋아하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해요. 이후에도 피자는 둘의 소중한 추억마다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둘이 함께 피자 레스토랑을 연 것이 크게 놀라울 것도 없죠. 브루클린 본점이 뉴욕 전역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고 곧 웨스트 빌리지에 추가로 식당을 오픈했습니다. 특히 웨스트 빌리지 점에 있는 화덕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화덕들 중 하나라고 해요.

 그럼에도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에밀리를 뉴욕 최고의 버거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드라이 에이징 패티와 특제 소스 그리고 특별한 프레첼 번이 조화를 이룬 에미 버거를 여러 매체들에서 뉴욕 최고의 버거로 꼽았습니다. 하루 25개만 판매하는 버거를 먹기 위한 사람들 때문에 브루클린 점은 평일에도 예약이 쉽지 않아요. 하지만 굳이 버거가 아니더라도 가 볼 만한 매력이 있는 집입니다. 멧과 에밀리의 스토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몰라도 식당 곳곳 낭만적인 분위기가 묻어 있거든요.

 브루클린 점과 웨스트 빌리지 점에서 파는 버거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정으로 판매하는 브루클린 점의 버거가 더 비싼 고기와 치즈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짧은 여행 일정이라면 맨해튼, 다운 타운 브루클린에서 떨어진 본점 대신 웨스트 빌리지 점을 방문해도 괜찮아요. 웨스트 빌리지 점의 에미 스택 버거 역시 드라이 에이징 패티를 쓴 웰 메이드 버거입니다. 피자 전문점인 만큼 온라인 예약뿐 아니라 배달도 가능합니다. 그래도 버거가 목적이라면 꼭 직접 가서 드세요. 피자는 다시 데워 먹어도 맛있지만 버거는 아닙니다.


공간

 6번가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W 4 St-Wash Sq) 역에 도착했을 때 아침부터 내린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었습니다. 식당 오픈에 맞춰 예약한 시간은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고요. 지난 주말의 화창한 가을 풍경과 다른 매력이 있겠다 싶어 식당 주변을 빙빙 둘러 산책했습니다. 비에 젖으면 도시의 소음도 더 커지지만 거리의 색도 한층 진해집니다. 대로변에 있는 베드포드 트라이앵글 공원(Bedford Triangle Park)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공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공터는 평소엔 주변 한량들과 배달 기사들이 머물지만 이날은 낙엽으로 가득한 게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겼어요.

버거 투어 한 달 차가 되니 첫 번째 손님으로 입장하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 정갈하게 올려놓은 접시와 포크, 물컵 그리고 작은 촛불. 낭만적인 동시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분위기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파스타, 피자 전문점에서 이와 비슷하게 실내를 꾸며 놓았고요. 다만 이 날은 겨울을 재촉하는 마지막 가을비가 내렸고 식사 내내 연인과 가족들의 나긋나긋한 말들이 들렸습니다. 피자♥︎에밀리라고, 메뉴판에도 사랑의 기호가 적혀 있습니다. 이것들 때문에 공간이 더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정문 앞에는 야외 테이블도 마련돼 있는데 봄, 여름에는 실내보다 이쪽이 먼저 채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뉴

https://www.pizzalovesemily.com/menus-west-village/


 피자 메뉴는 여럿 있지만 버거는 하나뿐입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죠. 다만 점포마다 판매하는 버거가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 브루클린 본점에서는 에미 버거, 웨스트 빌리지 점에서는 에미 더블 스택 버거를 판매합니다. 에미 버거는 하루에 25개만 판매하는 한정 메뉴라 서두르지 않으면 맛보기 쉽지 않습니다. (일요일 브런치 시간에는 수량 제한이 없다고 하니 이때를 노리셔도 좋겠습니다.) 반면 에미 더블 스택 버거는 언제든 주문할 수 있어요. 둘은 패티와 치즈, 곁들여지는 감자 등 핵심적인 요소에 차이가 있어서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버거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집만의 개성인 프레첼 번과 소스는 두 버거가 같으니 쉽게 맛볼 수 있는 에미 더블 스택 버거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저도 그래서 웨스트 빌리지 점에 방문했고요.


 에미 더블 스택 버거의 가격은 29달러. 제가 방문했을 때는 27달러였는데 그 사이 2달러가 올랐습니다. -무서운 뉴욕 물가- 그럼에도 드라이 에이징 패티 두 장이 들어가는 것과 와플 모양의 감자튀김이 함께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체감 가격은 이 동네 평균입니다. 물론 세금에 팁까지 붙으면 우습게 40달러를 넘어가지만 어쩌겠어요, 뉴욕에서 돈 절약하는 방법은 뉴욕을 떠나는 것뿐이라잖아요.

https://maps.app.goo.gl/ZYQRQVmUNyvYnddm7


버거

 에밀리의 버거는 담음새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식자재 보관용으로 쓸 법한 은색 접시에 종이를 깔고 버거를 올렸습니다. 넘치다 못해 흘러내린 소스가 바닥에 접시에 흥건하게 고여있는 것이 한 때 유행했던 더티 플레이팅을 떠올리게 했어요.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한편으로 아깝기도 한 모양새였습니다. 옆에는 작은 홈메이드 피클이 성의 없게 놓여 있고요.


 버거의 빛깔과 자태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검붉은 색과 매끈한 질감의 프레첼 번, 먹는 사람 체면 따윈 고려하지 않은 치즈와 소스의 상태. 특히 바닥에 흐른 소스가 이 동네에선 보기 힘든 붉은빛이라 맛과 향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구성은 드라이 에이징 한 소고기 패티 두 장, 캐러멜라이즈 한 양파, 아메리칸 치즈, 피클 그리고 이 집만의 에미 소스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었던 두 장의 패티는 에미 버거와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감자튀김은 와플 모양으로 가공된 것인데 특유의 모양 때문에 스틱 형태의 감자튀김보다 바삭한 면이 많습니다. 저는 포슬포슬한 식감을 선호하는 터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요.

 이 더티 섹시 버거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역시 손으로 들고 먹는 것입니다. 뒷감당을 감수하고 반으로 자른 버거를 손에 들고 한 입 물었습니다. 첫 입은 역시 모든 재료를 한 입에 먹어야 합니다. 이후엔 골라낼 때가 많은 피클도 그때만큼은 함께 먹습니다. 그래야 셰프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이 버거에 대한 가장 큰 궁금증은 두 가지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프레첼 번의 식감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 한 에미 소스의 맛과 향. 가장 먼저 돌진하는 이빨이 번의 식감을 전해 줬습니다. 겉보기에서 예측했던 대로 프레첼 번은 파삭, 하고 부서지는 질감이 어떤 참깨빵, 호밀빵과도 달랐습니다. 겉바속촉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분들이라면 아마 프레첼 번에 최고점을 주지 않을지. 안쪽 빵은 일반적인 화이트 번과 비슷하지만 밀도가 높아서 빡빡하게 씹히고 곡향도 강합니다. 간식으로 먹는 프레첼처럼 짠맛이 있진 않습니다만 존재감이 강한 빵입니다.

 이런 번을 쓰려면 속 재료들의 캐릭터도 강해야겠죠. 에미 소스가 그 역할을 합니다. 궁금했던 붉은 소스에서는 짠맛과 함께 매운맛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강하진 않았습니다만 뉴욕 버거에서는 쉽게 느껴본 적 없는 매콤 칼칼함에 호기심이 더욱 증폭되더군요. 마침 식사 괜찮냐며 질문을 던진 직원에게 물으니 고추장 소스라고 합니다. ‘고추장? 왜 여기에?’ 고추장과 마요네즈 등을 섞은 소스라고 하더군요. 피자집이니 당연히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를 썼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른 것도 아니고 고추장이 들어갔다니 놀라울 수밖에요. 그래서 유독 입에 짝짝 붙었구나 싶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소스와 번이 워낙에 강성이라 드라이 에이징 패티의 맛과 향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었습니다. 스매시 패티에 가까운 얇은 패티가 두 장 들어가는데 먹는 동안 두툼한 패티 한 장을 넣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고기를 쓴 만큼 미디엄 수준으로 구워 안쪽에 핑크빛이 남은 패티였다면 식감과 풍미가 극대화될 테니까요. 그래서 브루클린 점의 에미 버거가 궁금해졌습니다. 거기는 두툼판 드라이 에이징 패티가 들어가거든요. 고기의 상태를 고려해 또는 공급받는 형태에 따라 차이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완성형은 한정판 에미 버거인 것이죠.

자극의 향연이었습니다. 번의 식감이 독보적이었고 특제 소스는 맵고 짜고 단 것이 한국인인 제 입맛에 잘 맞았어요. 고추장을 넣었으니 당연하죠. 패티도 둘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진다 뿐이지 잡내 없이 잘 어울렸고요. 아메리칸 치즈는 지극히 무난한 선택. 녹아서 에미 소스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높은 가격에도 에밀리에서의 식사가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좋은 재료를 썼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다른 버거들과 차별화된 구성에선 많은 고민이 느껴졌어요멧과 에밀리의 취향이 반영 됐겠죠재료들의 상태도 좋았습니다다른 버거가   없는 경험과 접시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재미 버거 투어에서 에밀리는 짧은 여행 같은 존재로 기록됐습니다.



번 : ★★★★

패티 : ★★★☆

구성 : ★★★★

가격 : ★★★☆

분위기 : ★★★ 


이름 걸고 장사하는 집은 믿어 주자고요다음엔 꼭 브루클린 본점으로 에미 버거 먹으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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