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신은 도대체
눈을 감고 햄버거를 그려 보세요
참깨가 뿌려진 빵 사이로 두툼한 패티와 샛노란 치즈. 신선한 토마토와 상추가 붉은색과 초록색을 더합니다. 욕심이 많은 제 머릿속엔 고깃덩어리가 두 개인 더블 치즈버거가 있습니다. 한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두툼하고 고기에서 흘러내리는 육즙은 두 배가 되죠. 그걸 보며 생기는 식욕도 그렇고요. 언젠가 실제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상상 속 버거. 그런데 그게 실존했으니 오늘 소개할 업랜드의 치즈버거입니다. 제 상상을 찢고 나온 듯 완벽한 외모에 반해 한참을 감상했어요.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여행 3주 차를 맞아 버거 투어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30곳이었던 버거집 리스트는 어느새 백 개에 가까워졌고 예산도 상향돼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고급 식당들을 하나씩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달랑 버거 하나 먹고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초반엔 ‘아무리 그래도 햄버거인데.’라는 생각에 빡빡하게 굴었는데 보름쯤 지나니 받아 들이게 되더라고요. 뉴욕에서 돈을 아끼는 방법은 뉴욕을 떠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렇게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매일 뉴욕 내 이름난 버거집을 방문했습니다. 업랜드는 그 골든 위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집입니다.
주소 :345 Park Ave S, New York, NY 10010, United States | https://maps.app.goo.gl/QUugyYgC3peYFJUc7
메뉴 : $28 (업랜드 치즈버거)
홈페이지 : https://uplandnyc.com/ | https://www.instagram.com/upland_nyc
필라델피아 출신의 레스토랑 경영자 스티븐 스타가 2014년 오픈한 레스토랑입니다.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한복판, 매디슨 스퀘어 파크 옆에 있는 이 식당은 캘리포니아와 지중해를 키워드로 도심 속의 요리 휴양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업랜드의 지명을 식당 이름으로 붙였고 고객들이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천연 목재와 가죽, 꽃, 흙냄새로 실내를 채웠습니다. 활기찬 오픈 키친에선 셰프 저스틴 스마일리와 그의 팀이 창의적인 요리들을 만듭니다. 이런 매력들이 알려지며 파크가의 유명 식당들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 등 다수의 유명인들이 이 식당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해요. 자연스레 미쉐린 가이드 등 다수 매체에서도 이 식당을 소개했는데 그중 The Infatuation은 오바마가 선택한 치즈버거를 뉴욕 최고의 버거들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북쪽으로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과 브라이언트를 포함한 미드타운 대표 관광지, 남쪽으로는 유니온 스퀘어에서 소호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온라인 예약 서비스 Resy를 통해 간편하게 테이블을 잡을 수 있고 주말을 제외하면 경쟁도 심하지 않아서 맨해튼 투어 일정에 끼워 넣기에 더없이 좋은 식당이에요. 피자, 버거, 파스타, 구운 닭고기, 스테이크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메뉴들에 유명세 대비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가족, 연인과의 식사에 이만한 곳도 없을 거예요.
뉴욕에서 가장 먼저 생긴 습관은 식당 예약입니다. 심지어 지나가다 발견한 식당도 30분 또는 한 시간 이후로 예약이 가능한가 찾아보게 됐어요. 가능하다면 테이블을 잡아 두고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는 식이죠. 웬만큼 인기 있는 식당은 밖에서 보기엔 테이블이 비어 있어도 예약이 차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혼자서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엔 좋지 않은 자리를 안내받을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12월은 홀리데이 시즌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실패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날 전후로도 오 슈발, 미네타 태번 등 빽빽하게 예약을 해 뒀습니다.
도심 속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을 당시엔 오롯이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금빛 조명과 나무, 가죽으로 된 가구들이 아늑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바를 지나니 3대 가족 모임에 어울릴 법한 단체석이, 그 안쪽으로는 푹신한 소파와 나무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직원은 혼자 온 저를 식당 내부가 잘 보이는 소파 자리로 안내했습니다. 메뉴판과 물을 가져다주고 잠시 후 주문을 받기까지 유쾌하면서도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한 서비스가 매우 능숙했어요.
식당 내부는 꽤 넓고 해가 드는 창가와 노란 조명에 의지한 내부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바가 있는 바깥쪽이 유쾌하고 흥겹게 느껴졌다면 안쪽은 아늑하고 낭만적인 느낌이었어요. 특히 맞은편에 보이는 동그란 소파 좌석. 한 명씩 찾아오는 일행을 일일이 볼뽀뽀로 맞이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것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물론 제 자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혼자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작은 테이블의 간격을 적당히 띄워 놓은 것이 좋았어요. 식사 외의 요소에서도 이 집이 왜 좋은 평가를 받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들은 전채 요리와 파스타, 고기 요리로 구분해 ONE, TWO, THREE로 묶어 놓았습니다. 제대로 식사 즐기러 온 사람들이야 메뉴명과 설명을 천천히 살펴보겠지만 저는 버거가 어디에 있는지, 몇 종류가 있는지 탐색할 뿐입니다. 이 집의 버거 메뉴는 업랜드 치즈버거 하나뿐입니다. 가격은 28달러. 드라이 에이징 고기를 사용한 버거와 견줄 수 있는 비싼 가격입니다. 하지만 메뉴를 받고 보니 재료 구성이 좋고 감자튀김도 함께 나와서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가 방문했던 당시에는 버거 단품으로 20달러에 팔았다고 하네요.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 가격 인상과 함께 감자 끼워 팔기(?)가 시작된 것이 아닐지. 고기 굽기를 선택할 수 있었고 베이컨 추가 등 다른 옵션은 없었습니다.
잠시 후 주문한 버거가 앞에 놓였을 때 맛있겠단 생각보다 예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유난히 동그랗게 보이는 번과 차곡차곡 잘도 쌓아 올린 재료들, 보기 좋게 녹은 치즈까지 마치 식당 앞에 전시된 모형 같더라고요. 업랜드 치즈버거는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클래식 치즈 버거를 업랜드 스타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탄단지가 조화를 이루는 레시피는 물론이고 각각의 재료들에도 신경을 썼어요. 특히나 강조한 것이 패티입니다. 오레곤 주 농장에서 항생제 없이 방목해 키운 소의 고기를 살코기 80%, 지방 20% 비율로 빚었다고 해요. ‘풀을 먹여 키운 소의 고기(grass feed beef)’는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고기의 기준들 중 하나이며, 고급 버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버거의 구성은 참깨 번과 4온스 소고기 패티 두 장, 아메리칸 치즈, 토마토, 잘게 썬 상추, 고수잎, 절인 고추 그리고 아보카도입니다. 제가 먹어 본 뉴욕 버거들 중 이만큼 재료가 많은 버거가 없을 만큼 실한 구성입니다. 각각의 조리 상태 역시 좋았어요. 번은 그 자체로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안쪽을 살짝 구워 식감과 향을 살린 것이 좋았습니다. 패티는 큰 것 한 장을 넣는 대신 비교적 작은 크기의 패티 둘을 넣었습니다. 이때 장점은 겉면을 익혔을 때 얻을 수 있는 마이야르 효과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기 안쪽까지 익히기도 수월할 테고요. 패티 굽기는 미디엄으로 안쪽에 선홍빛이 살짝 비치는 정도입니다. 저는 이때의 식감과 풍미를 가장 좋아합니다. 지방이 20%를 차지한다는데 굽는 동안 지방이 녹은 건지 크게 기름지단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표면으로 적당히 육즙이 흐르고 씹었을 때 퍽퍽하지 않은 아주 좋은 비율이었어요. 게다가 패티 수에 맞게 치즈도 두 장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다른 소스 없이 아보카도와 Peppadew 사의 절인 고추로 간을 잡은 것도 각 재료의 맛에 충실하단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줍니다. 종종 클래식 버거에 그 집만의 특제 소스를 넣는데 오히려 없느니만 못할 때도 있거든요. 반대로 소스 없이 토마토와 상추뿐이었다면 밋밋했을 텐데 절인 고추의 톡 쏘는 매운맛이 입맛을 돋웁니다. 고수잎은 향을 더하는 정도로만 넣어서 싫어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피클은 버거 안에는 넣지 않고 접시에 따로 내어 놓았습니다. 오이 싫어하는 제게는 이것마저 완벽했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클래식 버거를 좋은 재료, 섬세한 조리로 완벽에 가깝게 빚은 결과가 업랜드 치즈버거입니다. 언뜻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이 버거에 이렇게 좋은 점수를 줄 거라곤 저도 먹기 전엔 몰랐습니다. 버거 가격이 25달러가 넘어가면 제 평가 기준도 보다 깐깐해지는데 이 치즈버거는 흠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비슷한 구성의 버거 조인트 치즈버거(https://brunch.co.kr/@mistyfriday/233)와 비교하면 패티의 품질이 확연히 좋고 케첩, 피클 대신 고수와 고추, 아보카도로 낸 맛이 한결 고급스럽습니다. 10달러 더 내고 먹을 가치가 있냐 물으면 망설임 없이 고개 끄덕일 것 같아요. 비싸서 자주는 못 먹겠습니다만.
클래식 치즈버거는 이 집이 최고였습니다. 개성 넘치는 레시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 못지않게 가장 흔한 버거를 이만한 완성도로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 버거는 무척 친절해요. 처음엔 의아했던 작은 패티 두 장의 의미를 두, 세 입 먹고 알아챘고 절인 고추와 고수도 먹다 보니 허투루 쓴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담컨대 이 치즈버거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번 : ★★★★
패티 : ★★★★
구성 : ★★★★☆
가격 : ★★★
분위기 : ★★★★
오바마 당신이 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