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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May 06. 2024

그래, 결심했어!

그림책 <감장바위 깜장바위>를 읽고

  아주 예전에 개그맨 이휘재의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때가 있었다. (맞다. 나는 옛날 사람이다^^;)

  이야기가 쭉 전개되다가 주인공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예를 들어, 아침 출근길 여차하면 지각할 수도 있는 순간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모른 척 지나칠 것인가 하는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선택부터 오래전부터 미래를 약속하고 만나온 가난한 집안의 여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생을 확 바꿔줄 수도 있는 재벌녀를 택할 것인가 같은 극적인 선택까지 매주 다양한 선택이 주인공 앞에 펼쳐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빠밤빠 빠밤빠 빰빠라라 빠밤~'하는 음악이 나오고, 갈팡질팡 고민하던 주인공은 "그래, 결심했어!"라고 주먹을 꼭 쥐고 결국 한 가지 길을 선택한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말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TV를 보던 나도 주인공처럼 매번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었다.


  

  그림책 <감장바위 깜장바위>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바위가 등장한다. 오랜 시간 나란히 앉아 가만히 있던 두 바위 사이로 어느 날 갑자기 번개가 떨어지고 흔들리다가 급기야 쩍 하고 땅이 갈라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 감장바위는 무서워서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깜장바위는 오히려 재밌다고 땅 위를 굴러다니기로 결정한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만큼 두 바위 앞에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진다.  


 

  땅 속으로 들어간 감장바위는 하루하루가 평화로웠고, 땅 위를 굴러간 깜장바위는 하루하루가 재미났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두 바위에게도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땅 속에 있던 감장바위는 힘센 나무뿌리가 내려와 자신을 감싸는 바람에 많이 아팠고, 깜장바위는 커다란 곰 때문에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가 포클레인에 의해 다시 땅 위로 올라오게 된 감장바위와 땅 위를 굴러다니던 깜장바위는 감장돌멩이와 깜장돌멩이가 되어 다시 나란히 앉아 속닥거린다. 각자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감장흙, 깜장흙이 되었고, 빗물 타고 멀리멀리 흘러가서는 시간이 흘러 둘은 하나가 되고 감장깜장 얼룩바위가 되었다.

 

  "네가 감장바위든, 깜장바위든 다 괜찮아. 어떤 선택이든 상관없어. 평화를 누려도 좋고, 재미를 찾아도 참 좋을 거야. 가끔은 아플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조차도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지나갈 거야. 그러니 내가 감장바위라면, 혹은 내가 깜장바위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할 필요도 없지. 언제나 그랬듯이 너는 너의 삶을 너의 방식대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으니까. 어떤 길도 다 괜찮아."


 감장바위와 깜장바위가 그렇게 나란히 앉아 나에게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매번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좀더 유리하고 이득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어렵게 결정을 내린다. 때로는 그  선택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이 결정해 주길 바랄 때도 다. 오죽하면 결정장애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권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괴롭게 선택을 할까? 선택하지 않은 또 다른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갈수록 세상은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만회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전제짓눌려서 모처럼 내게 찾아온 선택의 순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늘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선택을 할 때면 에너지를 많이 쓴다. 절대 실패하지 않으려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프지 않으려고....

  그런 나에게 그림책 <감장바위 깜장바위>는 그 어떤 선택도 실패가 아니라고, 후회해도 되고, 아파도 된다고, 또 다른 선택이 계속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지막이 속삭여주었다.

  

  그래, 결심했어!

  나도 나를 덜 채근해야지. 조금 더 가볍게 살아야지. 조금만 더 편안한 마음으로 평화롭고 재밌게 살기를 선택하겠어.

  

  휴직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직장 다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일하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많은 일들 가령 여행도 다니고, 미술관, 책방, 가고 싶은 곳 열심히 찾아다니고 하고 싶은 것들 씩씩하게 잘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많이 답답했다. 감장바위 같은 내가 깜장바위의 삶을 많이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두 바위의 모습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급해하는 마음도 한편으로 살짝 미뤄두고 가만히도 있어보다가 살살 움직여도 봐야겠다. 둘 다 진짜 괜찮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1. 그림책 제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도 크게 고민이 되지 않았다. 얼룩바위가 땅속으로 들어가든 땅 위를 굴러가든 다 평화롭고 재미있는 삶을 살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다. 어떤 선택이든 진심으로 얼룩바위와 나를 응원할 수 있다.


2. 그림책 <감장바위 깜장바위>는 윤여림 님이 쓰고, 무르르 님이 그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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