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л.кораблестроителей дом 20 корп.3
상트페테르부르크 어학당 기숙사는 '배를 건조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바실리 섬 끝자락 대로에 위치해 있었다. 핀란드만과 근접하여 경관이 아주 멋진 곳이었다. 기숙사에 도착한 첫날 나는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아 걸어 올라가야 했다. 3층 기숙사 복도에 들어서자 쿰쿰한 냄새와 기름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매콤한 향기와 여러 특이한 향신료의 향기가 복도에 가득 차 있었다.
방을 지나칠 때마다 들려오는 큰 소리들과 다양한 언어는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커다란 이민가방을 들고 배정받은 302호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중국인 친구 '쳉'이 살고 있었다.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하던 중에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인사를 나눴다. 쳉은 통통한 체격으로 키는 나와 비슷했고 나이는 나보다 2살 많았다.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에 쳉은 기숙사 방과 화장실, 주방을 소개해주며 필요한 식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사용하라며 친절히 안내해 줬다.
기숙사 방은 4평 남짓 정도 되었고 자그마한 침대 2개와 책상 그리고 미니 옷장 하나로 구성된 아담한 방이었다. 침대는 성인 한 명이 누우면 딱 사이즈가 맞을 만큼 작았고 책상은 꽤 길이가 넉넉하여 여러 물건을 올려둘 수 있었다. 이곳의 장소와 물건은 거의 공용으로 사용되었다. 지금껏 공동체 생활을 한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새로 받은 이불을 침대 위에 세팅하고 나니 지금껏 맡아보지 못했던 세탁 세제의 향이 강하게 났다. 짙고 시원한 느낌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새 이불의 향기가 너무 좋았다. 이국적이면서도 깔끔한 느낌의 향기는 맡을수록 기분이 좋았다. 이 향기는 나에게 러시아의 향기로 깊이 각인 되었다.
나는 기숙사에 올 때 식기라고는 냄비 하나만 달랑 들고왔는데 필수품으로 꼽히는 밥솥은 짐을 붙일 때 무게가 초과될까 걱정되어 따로 챙기지 않았다. 냄비밥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었던 터라 밥솥이 없어도 걱정 없었다. 중국인 친구들은 이런 나를 신기하게 봤다. '오!!'라고 탄성을 지르며 놀리는 듯한 말투로 한국에는 밥솥이 없냐며 물어봤다. 그럴 때면 나는 한국이 밥솥 최강국이라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불필요한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했다. 중국인 친구들은 모두 밥솥이 있었고 거기다 거대한 식칼이며 무쇠 프라이팬 등 조리 도구들이 일류 중국식당에 온 듯 세팅을 해두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쾌쾌한 냄새가 유독 심했다. 남자들만 사는 방이라 그런가 잘 치우지 않아 우리 방에는 다른 방 보다 바퀴벌레가 너무도 많았다. 침대, 책상, 옷장, 주방을 열면 바퀴벌레들은 후다닥 움직였다. 이렇게 많은 바퀴벌레와 함께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퀴벌레들은 너무도 징그러웠다. 바퀴벌레에 유독 겁이 많았던 나는 옷장과 부엌 장을 열 때면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그런데 이놈의 바퀴벌레들은 겁도 별로 없었고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이불 위에서 기어 다니기도 하고 책상과 서랍 사이사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 번은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내 이불 위를 기어 다니며 요리조리 움직였다. 나는 기겁하여 이불을 새로 교체하고 그 위에 페브리즈를 엄청나게 뿌렸다.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결이 중요했지만 우리 방은 청결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기숙사 관리실에 문의하여 약도 여러 번 치기도 하고 중국 친구들도 바퀴벌레 약을 잔뜩 뿌려놓았지만 바퀴벌레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방 구석구석 바퀴벌레가 너무 많았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는 조금씩 바퀴벌레에 내성이 생겼다. 바로 옆 벽면을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를 봐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차분하게 휴지를 뜯어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었다. 요리를 할 때 종종 보여도 전혀 화나거나 무섭지 않았다. 나는 항상 차분하게 휴지를 뜯어 '탁!'하고 한속으로 바퀴벌레를 잡았다. 몇 개월을 함께하다 보니 바퀴벌레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사라 지고 해탈에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분노하게 되는 용서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책상 위를 기어 다니거나 음식 근처에 붙어있는 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분노의 슬리퍼로 내리치거나 휴지를 풀어 힘껏 잽싸게 잡았다.
우리 방 기숙사는 중국인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바로 옆방에 살고 있는 룸메이트 중 한 명이 중국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싸였다. 키도 크고 훤칠하며 부자이기까지 하니 남, 여 친구들이 자주 놀러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주방은 난리가 났다. 설거지는 매번 쌓이기 일쑤였고 남은 음식들은 항상 인덕션 위에 그대로 올려져 방치되어 있었다. 유독 기름을 사용하여 음식을 하기에 중국 향신료와 섞인 냄새가 언제나 방에 가득 차게 됐다. 문제는 옆방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학연수를 온 중국인 친구들은 단 한 번도 학교에 간 적이 없었고 항상 게임(워크래프트3)을 하며 기숙사에 있었다. 영어도 러시아어도 소통이 불가하던 중국인 친구들에게 무엇을 치워 달라는 부탁을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청소와 정리는 항상 내 몫이었고 투덜거리며 어쩔 수 없이 항상 치울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기숙사가 참 좋았다. 비록 지금껏 살아왔던 환경과는 너무도 달랐지만 추운 겨울 따뜻한 내 방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2주에 한 번씩 새로 교체하던 이불의 향기도 너무 좋았다. 아직까지 그 향기를 내 첫 러시아의 향기로 기억하고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때면 녹물이 나와도 추운 겨울 꽁꽁얼어 붙은 몸과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를 소박함으로 가득 찼던 기숙사 생활이 불평할 수 있는 것들을 덮어준 듯하다. 기숙사 18층 복도 끝 비밀 계단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핀란드만의 노을 지던 하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스텔 색으로 뒤덮은 하늘은 오직 기숙사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종종 내 인생 최고의 기숙사를 추억하며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