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바스 Aug 16. 2024

내 인생 가장 쓴 커피를 맛보다

러시아에서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셔 봤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커피를 좋아해 종종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 먹곤 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는 다양했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과 씁쓸하면서 담백한 맛이 좋았다. 달달한 커피를 마실 때면 기분도 좋았고 어른이 된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자주 마셨다. 커피를 좋아했지만 커피에 대한 지식은 무지했던 터라 내가 아는 커피의 종류는 손에 믹스커피, 편의점 커피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러시아에서 살았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표 카페 '꼬뻬하우즈

어학연수 시절 함께 친하게 지냈던 아시아, 유럽 친구 몇몇이 있었다. 나보다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형들이지만 동갑내기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중국, 대만, 스페인,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럽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주변에 있는 Bar나 카페에 들러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오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개인별로 마시고 싶은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여 먹었다. 생활비에 쪼들리던 나는 주문하던 순간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짠돌이였던 나에게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는 건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카페 꼬페하우즈(Кофехауз)에 갔다. 메뉴를 살펴보니 가장 저렴한 음료는 에스프레소였다.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니 별다른 생각 없이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나보고 멋지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고 나도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세워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꼬뻬하우즈 메뉴


에스프레소는 아주 아주 작은 잔에 담겨 나왔다. 에스프레소를 처음 본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려 70 루블 가까이 되는데 한 모금도 안 되는 커피가 담겨 나와 있었다. 보통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1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눌 텐데 에스프레소는 10초 만에 다 마실 수 있는 적은 양이였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옆에 아주 작은 동그란 초콜릿이 하나 딸려 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렇게 작은 잔을 잡고 홀짝 한 모금 마셔봤다. 뇌리를 스치는 충격적이 맛이었다. 너무 뜨겁고 써서 인상이 절로 쓰였다.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지만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왜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때 친구들이 왜 나에게 따봉을 날렸는지, 웃었는지 맛을 보면서 이해가 됐다.  


마시면 마실수록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릴 적 억지로 먹던 한약 녹용이 떠오르기도 했고, 맹장 수술을 하며 먹었던 쓰디쓴 가루약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모금씩 홀짝 거리며 쓰디쓴 맛에 적응하고자 했지만 적응이 불가능했다. 짠돌이 정신에 커피를 남기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워 결국 홀짝홀짝 에스프레소를 다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응되지 않는 쓴 맛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에서 가장 싼 커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쓴 맛에 적응이 필요한 커피야 돈 아껴야 지^^'라고 되새기며 에스프레소를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했다. 


첫 에스프레소를 마신 이날 하루종일 심장이 두근거렸고 잠도 오지 않아 밤새 뜬눈으로 다시 학교에 갔다. 그렇게 유학생활의 첫 커피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시작했다. 커피는 사치였지만 친구들이 함께 카페에 가자고 하는데 안 갈 수도 없다. 에스프레소에 참고 견디고 적응해야 한다. 어학연수 6개월 동안 카페 갈 때면 내가 주문하는 음료는 항상 에스프레소였다. 어쩔 수 없었다. 가격이 제일 저렴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러시아 짠돌이가 먹는 소시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