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쌤 Jul 30. 2022

세상에 좋은 직업은 없다지만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41

세상에 좋은 직업은 없다지만, 내 직업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이야기는 혼자 하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


오랜만에 혼자 보내는 휴가다. 엄마와 보내는 이틀도 좋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보낸 2박 3일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혼자 하는 여행을 내가 정말로 즐기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나는 이미 방법을 좀 터득했나 보다.


생각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스킬이 좀 필요하다. 그냥 로망만 가득해서 배낭 메고 떠나면 생각보다 심심하던데? 재미없던데? 하는 후기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낯선 이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가장 좋고, 혼자라서 경비가 덜 들 것 같지만 아닌 부분도 있다. 액티비티나 체험 프로그램을 적절히 이용하면 더 좋다.


나는 지금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다. 지금 벌써 세 번째 숙소를 옮겼다. 짐이 많으면 옮기기가 귀찮지만 나는 배낭 하나라 그런 것도 없다. 게스트 하우스마다 저녁 식사를 하는 곳도 있고 파티를 하는 곳도 있다. 나는 적절한 규모를 골라 참여하고 있다. 아직 일정이 꽤 많이 남았지만 오늘은 비가 오는 낯선 곳에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은 날이라 짧게 라도 정리해본다 


안녕하세요, 여행은 얼마나 길게 오셨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뭐 하며 사세요? 

사람이 셋 이상 모이면 자연스레 묻게 되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학생들의 대답은 대부분 미래형이다. 졸업 예정입니다. 취업 준비 예정입니다.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직장인들은 휴가 첫날과 마지막 날의 표정이 상당히 다르다. 같은 테이블에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상당히 재밌다. 


나도 대학 졸업 전에 부지런히 아르바이트해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인데 더 열심히 다녀볼걸 하는 생각도 든다. 덜 먹고 덜 써서 좀 더 봤어야지 과거의 나야. 

휴가나 연차로 여행 온 직장인들의 돌아가기 싫다가 대학생들의 그것과 비슷한 건 줄로만 알았다. 퇴사하고 여행 왔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들인지 전혀 몰랐다. 




숙소에서 만난 상당히 놀 준비가 된 그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본인도 직업을 밝히기 쑥스러워했지만 선생님도 사람이다. 학교 벗어나면 좀 놀아야지.


PD라고 한 그분은 '바쁘겠네요?'라는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도망 나왔지만 할 일이 쌓여있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정의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단합이 되던 그 테이블에는 사회 학과와 정치외교학과 출신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신기한 게 모르고 이야기하다가도 티가 난다. 다들 구사하는 단어가 예사롭지않다. 


동그랗고 인상 좋게 보이던 한 분은 변호사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로 단합되었던 그날 저녁은 참 더웠지만 유쾌했다. 


같은 방을 썼던 그분은 쇼핑몰을 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전화를 하는데 통화 내용이 딱 고객 컴플레인이다. 아는 만큼 들린다.


와인마시러 갔던 분위기 좋은 바의 사장님은 일상의 지루함을 와인으로 타파해보고자 노력하시는 치과의사 선생님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분은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말 그대로 계절을 오롯이 느끼며 사는 분이었다. 다음날 태풍이가고 맑아진 문섬에서 다시 만난 건 또다른 우연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그 꿈을 이룬 예약제 혼술바의 사장님은 말그대로 인싸였다. 인싸를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


마지막날 만난 사진 작가님은 임용 합격후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시는 사범대 선배님이었다. 동년배라 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에 학교 생활을 했을 것이다. 실낱같은 공통점으로 시작한 대화는 현재의 모습에서 끝났고 다이나믹한 그분의 인생사에서 아직 나는 너무 어리다는 것을 한번 더 느낀다. 


다이빙 강사님들의 삶을 들어보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 좋은 어느 곳, 시야가 좋은 어느 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 다이빙이 좋아서 제주에 자리잡았다는 사람들. 나는 저들 처럼 무엇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참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걸 오랜만에 느낀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사는 나 자신은 여전히 참 오만하다. 내 좁은 세상 안에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더 이상 사고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읽거나 쓰지 않는 삶. 그것은 죽은 삶이 아닌가? 


스스로를 향한 심판의 칼을 들어야지 마음먹어도,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잊어버린다. 햄스터는 쳇바퀴를 굴리면서도 어떻게 멈출 때를 아는 걸까?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걷고 있을까?


직업에 대한 회의는 아니다. 나는 강사로서 내 삶을 사랑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은 삶의 이정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일상에서 나에게 학원 일은 하루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서 강사라는 말은 직업을 소개할 때나 쓰는 말이다. 좀 잊어버리고, 내려놓고, 비우고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 2주의 휴가에 누구는 2주 살기, 장기 휴가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나는 그냥 출근하지 않는 2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도 그렇게 칭찬해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