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내가 누구게?

범인은 너다!

by 월하수희

수련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이 형사는 수련이 건네준 봉투를 소중하게 감싸 쥐고 들뜬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에이~ 악필이어도, 서툰 글이어도 저는 감개무량합니다. 드디어 저도 수련 씨에게 이런 걸 받아보네요. 아! 그 티켓은 제 친구가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꽤 유명한데요. 여자친구 생기면 같이 보러 오라고 해서…. 하하! 수련 씨가 여자 친구는 아직 아니지만, 하하!."

수련은 더 들어줄 수 없다는 듯 그의 말을 자르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또박또박 슬픈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이 형사님! 그 봉투 안에는! 어떤 글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저 저의 체모…. 그러니까 말하자면 모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머리털 50여 개와 거시기 털 몇 개가 들어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수련은 차 문을 열고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아!. 아…. 그렇지, 마약검사를 하려면 필요하지. 수련 씨는 잘못이 없어. 내가 바보였어. 근데 왜 눈물이 날 거 같지? 후우.”

이현우 형사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콕콕 찍어 닦아 냈다.

집에 돌아온 수련은 여전히 지훈의 전화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다.

비밀의 방 그 한 면을 가득 메운 누군가의 사진들 위에서 손가락을 그었다 말았다 고민 중이다.

“냉정해져야 해 김수련. 너만이 할 수 있어. 그 괴물을 너만 막을 수 있어. 아버지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거야. 아빠는 지금…. 억울함에 올라가시지도 못하고 지금 바로 여기 있어.”

수련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자 그저 음침하고 서늘했던 어두운 방 안이, 지옥불 속에서 몸부림치는 듯 끔찍하고 처참한 시신들로 가득 메워졌고 텅 빈 눈 안에 원통함과 슬픔만이 가득한 그들은 수련의 주변을 에워쌌다.


그러나 수련은 익숙하다는 듯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곧장 사지가 절단되어 겨우 그 형태를 이어 붙인 한 남자를 향해 다가선다.


그 만은 다른 혼들과 달리 수련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빠!.."


꿈에서 나타나지 않던 아버지의 형상이 이젠 이곳에 머물고 있다.

아무 말도 없는 아버지는 조각난 몸을 겨우 이어 붙여 서서 뒤룩뒤룩 눈알을 굴려 벽에 한 곳을 가리킨다.

수련은 그 시선을 따라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태성 그룹 회장 의 첩이자 실세 구 미은.

“당신 누구야?.”

도무지 접점이 없을 거 같은 그녀의 모든 것을 파악한 지 오래라 수련은 여전히 그녀의 사진을 가리키는 아버지의 눈을 점점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말 내가 미쳐가는 건가.. 아버지의 형상도, 여기 있는 원혼들도 그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 일 뿐일 수도 있어.”

괴로운 표정으로 거실로 다시 나온 수련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이현우 형사였다.

‘뭐지? 벌써 검사 결과가 나올 리는 없고.’

“여보세요, 네. 네? 뭐라고요? 범인이 벌써 잡혔다고요?!.”

수련은 아이를 납치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한 마음에 주저앉고 말았다.

**
불과 몇 시간 전-

살해된 여아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는 금발 머리의 한 남자, 역시나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 손목을 휘감은 뱀 문신이 있다.

콰광! 철제 현관문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
우당탕, 쿵쿵!

거침없는 발자국들이 주택 안을 뒤흔들며, 십여 명의 경찰이 순식간에 작은 연립주택 안으로 밀려들었다.

“윤성훈 손들어!.”

“너를 미성년자 약취 강간, 감금 살해 혐의로 기소한다. 지금부터 네가 하는 말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여자아이의 나체 사진을 띄워놓고 경찰이 들이닥치는 데도 미동도 없던 금발 머리 남자는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며 두 손을 들었다.

경찰들이 한숨을 돌리려는 그때 남자가 경찰들을 향해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아동 연속 살인범을 검거하는 순간이었다.

십여 명의 경찰의 총구가 모두 남자를 향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 남자의 얼굴엔 불길하기까지 한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의 동공이 확장되었고 여기저기 수많은 바늘 자국이 있었으며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자수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들어 올린 오른팔 오른손에서 미끄러지듯 번쩍이는 칼날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칼이다!.”

동시에 탕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하나는 공포탄. 하나는 실탄이었으나.
그마저도 남자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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