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내가 누구게?

그게 맞아?

by 월하수희

차 안은 히터가 풀로 가동 중이었지만, 두 여자의 사이엔 냉장고 문을 열어둔 듯한 싸늘함이 감돌았다.

그 냉기는 아무래도 운전석 쪽, 은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게 분명했다.

난폭한 정신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도 난폭해지게 돼있다. 이른바(Road Rage), 의외로 이러한 분노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음주 운전이나 졸음운전 보다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바로 은정처럼.

끽이이익--!!!
쿵!

결국 신호를 놓친 은정이 당황하며 급정거했지만, 천천히 다가오던 좌측 차량과의 경미한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운전대를 쥐어짜듯 부여잡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은정.

“X발! 그러니까 20년 전에 뒈진 놈 이름을 왜 꺼내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냐고!.”

은교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사거리 한복판에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당사자들이라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은정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했다.

들이박힌 차 주가 당연하게도 목덜미를 부여잡고 그녀들에게 다가오자, 은교는 핸드폰으로 보험회사 번호를 찾으며 은정을 진정시켰다.

“언니 일단 사고부터 해결하자. 가서 얘기하자 응?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 얘기했어. 미안해.”

또 대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은정을 붙들고 애원하듯 사과하는 은교.

그러나 은정은 여전히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네가 제일 문제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여대고, 재수 없게 우리 때문에 뒈진 거나 다름없는 애들을 왜 떠오르게 만드냐고? X발.. 내가 정말 뭐 죄책감..양심도 없는 그 여자 같은 줄 알아? 흑흑..”

독하게 말을 쏟아대다가, 갑작스러운 격정에 휩싸여 마지막 말끝엔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눈물까지 흘리는 은정이었다.

그런 은정을 은교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그녀의 등위로 엎어져 토닥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언니는 절대 그 여자 같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알아. 미안해 그 애들을 떠올리게 해서. 내가 잘못했어.”

차 문을 두드리며 뭐라 소리치는 상대방 차주도, 사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빵빵거리는 경적도 소리도 잠시 멀어졌다.

그들 사이엔 잠시 오직 서글픈 흐느낌만이 남아 서로를 위로했다.


한편 수련은 가영이 돌아가고 식은 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후. 자기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아직 거울을 보는 것은 두려웠지만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집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저예요. 무조건 들어주셔야 할 부탁이 두 가지 있어요. 이현우 형사님.”

언제나처럼 현우의 차 안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처음에는 왜 밖에서 만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수련이었지만, 말단 형사였던 현우에게도 감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불평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패였다고 의심했던 이현우 형사는 그저 시키는 데로 뒷정리나 수습했던 것뿐. 아버지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었고 내막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김문일 팀장이 살해당한 것이 지나치게 축소되고 왜곡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증거자료.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 두 개! 그중의 하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 죄책감도 있었다. 그래서 수련을 무조건 돕기로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정보를 빼내어 주기로 했다.

지금 수련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이현우 형사는 수련에게 있었던 사건을 듣고 또 차가 들썩이게 놀라며 화를 냈다.

“그런 새끼를 가만뒀어요? 수련씨 다친 데는 없고요? 그 새끼 이름이랑 전화번호만 줘봐요. 내가 이 새끼를.”

씩씩대는 이 형사가 가라앉기 기다리며 익숙하다는 눈빛으로 덤덤하게 바라보는 수련.

“그러니까 이 형사님이 하실 일은 비공식적으로 제게 어떤 마약 성분이 나오는지 알아내시는 거랑 최근에 살해된 두 아이에게서 저와 같은 마약 성분이 나왔는지 그걸 확인해 주시면 되는 거예요.”

잠시 생각이 머문 이 형사의 눈동자가 다시 수련을 향했다,

“당연히 수련씨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죠. 그건 알겠는데, 하필 왜 그 아이들에게서 검출된 마약이랑 대조하려는 거예요? 수련씨 너무 깊이 파고들지 마세요. 걱정돼요.”

두 사람은 잠깐의 담소를 더 나누고 막 헤어지려던 참이었다.

이쯤에서 건네줘야지 싶었던지 마치 서로 짠 듯이 동시에 종이 봉투를 상대에게 건넸다.

이 형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얼마나 큰 기대를 머금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게 드러났다.

반면 수련은 거침없이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더니 연극 티켓 두 장을 꺼내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이 형사는 봉투를 뜯어보지도 못하고 복숭아처럼 물든 두 뺨으로 헤벌쭉 하니 수련을 바라보며 묻는다.

“수련씨 이건 뭔가요? 아무래도 집에 가서 읽어보는 게 낫겠죠?.”

수련이 뭔가 찜찜하고도 죄책감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여기서 보는 건 절대 옳지 않아요. 그런데 이 형사님 읽어볼 만한 건 아니랍니다.”

수련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