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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tyeight days Jun 16. 2021

병원을 옮기다.

146병동 9호실 6번자리

2014년 12월 7일 일요일 병원을 옮기다.     


  CT검사 결과 간의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간염이 아닌가보다. 의사는 잘 모르겠는 병명을 댔고, (간과 담관의 문제였던가) 최악의 경우 간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니 아는 큰 병원이 있으면 알아보라 했다. 남편이 서울의 한 병원을 선택했고, 새벽 3시 쯤 앰뷸런스를 타고 전원 했다. 

  전원한 병원에는 소아 응급실이 따로 있었다. 채혈에 몸부림치며 우는 아기를 어찌할 줄 몰라 미안하다고 울고 있는 나에게 간호사는 “어머님 이러시면 아이가 더 불안해해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매번 보는 어린 아이의 울음이니 그 간호사에겐 흔하디 흔한 일상이겠지만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낯설고 힘들었다익숙해 질 수 없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세 번째 채혈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응급실의 작은 침대에서 하얗다 못해 푸른 형광등 불빛 아래 작은 아이를 품고 잠에 들었다. 

  새벽 6시 남편이 의사에게 불려갔다. 제발 간염정도로 끝나길. 아니 오진이었다고 말해주길. 아무렇지 않게 며칠 쉬다 집으로 갈 수 있기를. 

  돌아온 남편은 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뭐래? 많이 아픈거래?”

  갈팡질팡 하는 사이 불안감이 심장을 죄여왔다.

  “혈액암이래.. 백혈병..”

  앞 문장의 위엄때문인지 뒤에 내가 뭐라고 물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백혈구 수치가 정상치보다 높고 비정상 세포로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닐거야. 아직 확실한게 아니잖아. 검사를 더 해보면 달라질수도 있어.’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오후가 오기 전에 입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동식 침대를 따라 간 곳은 14층. 


  ‘이곳은 소아암병동입니다.’


  버튼을 눌러 문이 열리고 또 한번 문이 열렸다. 

  ‘왜 우리 건희가 이곳에 들어와야 하는 거지. 아직 병명이 확실해진 것도 아닌데. 왜지?!’

  라고 생각하는 사이 눈앞이 어른거린다. 남편에 기대어 걸어 들어갔다.     

  146병동 9호실 6번 자리. 6인실에 배정을 받았다. 벽쪽 자리라 가뜩이나 어두운 마음이 더 어두워졌다. 간호사가 몇 차례 오간 뒤, 담당의가 와서 아이에 대해 이것 저것을 묻고 갔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 3회 채혈을 할 것이고 수액이며 약도 들어가야 한단다. 채혈이 힘들 것을 예상해 다리로 뻗은 굵은 혈관에 라인을 잡는 C라인 시술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바로 시술 시간이 잡혔다. 아이는 또 한번 잠에 들었다. 아이를 작은 시술방에 넣고 한참동안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1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시술은 2시간이 훨씬 지난 시점에 끝이 났다. 돌아온 아이를 안을 틈도 없이 간호사가 라인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채혈을 하고 갔다. 내 손목만한 허벅지에 얇은 대롱 두 줄이 매달려 있었다. 하나는 수액이 들어가고, 하나는 항생제 투약이나 채혈할 때 쓴단다. 작은 건희에게 달린 기다란 줄을 건드릴까 두려워 아이를 안아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조심해서 안아도 된다고 일러주고 가버렸다.

  새벽 병명을 진단 받았을 때 8만을 웃돌던 백혈구 수치는 수액을 맞고 이뇨제 투여를 하면서 만 3천으로 떨어졌다. 백혈구가 장기에 축적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가루약을 받았는데 아기에게 가루약을 어떻게 먹여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간호사에게 시럽은 없냐고 물으니 어이 없는 듯 말을 못한다.


 ‘아 이곳은 소아과가 아니구나.’ 

 곧 1회용 주사기를 건네받아 약을 생수에 섞었다. 분유와 모유밖에 먹어보지 못한 아이의 입을 억지로 벌려 넣었다. 뱉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녁이 되니 혈구 수치들이 엉망이라 혈소판을 맞았고, 아이는 힘들었던 24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꿈나라로 홀로 넘어갔다. 길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나는 그런 아이 옆에서 잠이 올 듯 말 듯 피곤에 잠깐씩 졸아가며 오가는 간호사들을 지켜보며 밤을 지냈다.  

  이렇게 병원에서 아이만 돌보다 끝나는 것은 아닌지. 입원이 얼마나 길어지는 것인지. 큰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곧 복직을 해야 하는데 회사에는 어떻게 알려야하는지. 새벽엔 백혈병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는데 그 새 현실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제 두돌 지난 큰아이 걱정이 컸다. 둘째 산후 조리 하느라 보름 넘게 떨어져 있었고, 만난지 한 달만에 다시 떨어져 지내야 하니 속상하고 안쓰러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픈 둘째의 안쓰러움보다 내 품에서 키울 수 없는 첫째에 대한 애잔함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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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암병동은 보호자 1명만 출입할 수 있다. 환아가 어려 단독 케어가 힘들 경우(씻기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니까)에는 2명이 출입할 수 있지만 잠은 같이 잘 수 없다. 그리고 보호자는 꼭 마스크 촥용을 하고 손씻기를 잊으면 안 된다.

  백혈병에 가장 중요한 수치는 백혈구 수치다. 백혈구 수치의 정상 기준은 4천에서 1만 정도이다. 몸 속에 병균이나 염증이 있으면 백혈구가 치료부대로 나서 정상수치보다 높아질 수 있다. 건희처럼 8만 수준은 이상 증상이며 백혈구 모양을 보고도 백혈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간혹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주임에도 백혈병으로 진단 받기도 하는데 이는 골수 검사 같은 추가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보통 만 1세 이전, 13세 이상의 아이들, 백혈구 수치 10만 이상의 아이들은 고위험군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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