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제6회 협회장기 춘계 생활체육 양궁대회가 있었다.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심지어 야외에서 활을 쏴 보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설렘 50%, 걱정 50%, 비장함 50%... 도합 150%의 마음으로 대회를 기다렸다.
사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스포츠 대회'라는 이벤트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정신을 차려보니 대회 장소인 김수녕 양궁장에 서 있었다ㅋㅋㅋ
국궁과 달리 양궁은 실외 양궁장 자체가 드물다. 양궁을 시작하고 보니 이 점이 참 아쉽다. 실내양궁대회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많은 양궁 대회가 야외에서 진행된다.
그동안 나는 온도 습도, 조명까지 완벽한 실내 양궁장에서 활을 쐈다. 처음으로 바깥에서 활을 쏘는 날이 바로 대회 날이라니? 이거 완전 스포츠 만화 이벤트 아니냐?(물론 만화 같은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상상한 대회 날의 날씨는 선선하게 부는 바람, 약간 더운 온도, 쨍쨍한 햇볕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10m는 워낙 단거리라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비가 오고...? 강풍이 불고...? 심지어 춥고.......?
그러나? 양궁 대회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취소되지 않는다. 우천시 취소? 그런거 없음.
모두가 공평하게 비에 쫄딱 젖고 바람을 맞고 덜덜 떨면서 활을 쏜다.
바람이 많이 불면 활을 들었을 때 휘청거린다는 걸 알았다.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겪어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번씩 현을 튕겨서 빗방울을 털어내기도 해야 한다. 내가 비에 쫄딱 젖는 건 상관없는데 활이 젖는 건 마음이 아팠다.
이런 환경에서 활을 쏘고 있으려니 저 먼 옛날 수렵채집 시대에 각인된 유전자가(?)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현대인의 허약한 몸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야생성이 깨어났다. 재밌었다는 뜻이다ㅋㅋㅋㅋㅋㅋ
나는 메달이나 뱃지, 스탬프, 칭찬 스티커 같은 종류의 보상에 환장을 하는 편이다.
현실적으로, 메달보다는 대회에 참가하는 경험 자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전에 누우면 머릿속에 메달이 어른거렸다. 소인배라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대회에 나가겠다고 결정했을 때는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는데, 대회가 가까울 즈음에는 720점 만점에 716, 714점까지 쏠 수 있게 되어서 솔직히 개인전 점수를 기대했었다.
음, 아니? 사실은 기대하지 않았다. '실전'에서는 평소보다 실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그치만 쬐끔은 기대했다. 양궁장 사장님과 매니저님이 대회 대비라면서 여러가지 훈련도 시켜주셨으니까.
아니... 그래도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재밌게 쏘고 오자고.
아니? 그래도 메달을 받아야 재밌는 거 아님?
...갈대도 이렇게 흔들리지는 않겠다.
자세한 대회 결과는 비밀이다. 아무튼 나는 메달을 얻었다!
대회 당일에는 여러가지로 아쉬워서 푸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웬걸, 집에 와서 다시 메달을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춘계 생활체육 양궁대회 메달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추계 대회의 메달은 디자인이 다를까? 벌써부터 갖고 싶다. 기왕이면 이번 메달과는 다른 색깔로...
대회 중간에는 너무 긴장해서였는지 물도 잘 먹히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안 먹혀도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결국 내가 준비한 음료수도 못 먹었고 따로 준비해주신 생수도 못 먹었다.
그래서인지 대회가 끝나고 나자 생전 처음 겪어보는 허기가 찾아왔다ㅋㅋㅋㅋㅋㅋ 잔디를 뜯어먹어도 별점 다섯 개를 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곧장 밥부터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활부터 분해해서 극세사 타월로 닦은 뒤 말렸다. 퀴버나 체스트 가드 같은 물건들도 탈취체 칙칙 뿌려서 널어놓았다.
'방치하면 부품에 녹이 슬 수도 있다'는 말이 너무 무서워서 활부터 챙김...
이러고 나서 침대에서 기절했다.(ㅋㅋㅋ)
대회 나가기 전부터 릴리즈가 약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2세트부터 릴리즈가 완전히 무너졌다.(또르륵)
화살이 한번 8점에 꽂히는 걸 보고 나니까, 또 잘못 날아갈까 무서워서 릴리즈를 힘 있게 빼지 못했다.
그리고 오조준을 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다. 9점에 조준을 했다면, 거기에 진짜로 쏜다는 느낌으로 마지막 자세까지 유지를 해줘야 하는 거였다. 코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했더니 마지막 엔드에서는 엑스텐이 주루룩 나오더라ㅋㅋㅋ 세상에ㅋㅋㅋㅋㅋㅋ
영점을 조정해도 화살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세 문제다. '다음에는 잘 쏴야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다음 대회에서는 좀 더 침착하게,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메달 또 받고 싶어~!!)
첫 야외 활쏘기, 첫 대회는 이렇게 끝났다.
진짜 너무 재미있었다... 여러분 양궁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