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의 직장생활

네? 감정을 빼라구요? 나를 지우라구요?

by 꿀별

어느덧 회사원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강물을 거스르지 않는 연어처럼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담백한 태도를 유지하며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개선을 요구할 때 역시 맘 상하지 않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 infp와 enfp를 오가는 -nfp형 인간인 내가 우리네 인생에서 감정을 배제한다는 게 쉽지 않다. 거기다 일상 대화의 70%가 터무니없는 이야기인 개소리대마왕인 나는 어떻게 저렇게 팩트만 말할 수 있는지 매번 놀라곤 한다.


당연한 소릴






감정형 인간의 직장생활

사실 대학교 때까지 굉장히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설명했고, 슬프고 우울한 날에는 집에 가서 현재 느끼고 있는 우울이 가득 담긴 일기를 썼다. 즐거운 일에는 열렬히 행복해했고, 화나는 일에는 격렬히 분노했다. 나 자신에게만 충실했기에 내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도 하며 즐겁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럴 수 없는 곳이다. 회사에서 나는 중심이 되어선 안되고, 될 수도 없다. 일을 할 땐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는 게 옳고, 고객의 관점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25년간 '나'와 '내 감정'을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젠 '회사'와 '고객'을 중심으로 둬야 하는 것이다.


조금 어이없지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땐 이 개념을 몰랐다. 그래서 쓸데없는 대화를 하지 않고, 팩트만 이야기하는 상사분들을 보며 다들 매정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배워갔다. 우리는 서로 친해지려고 만난 게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만난 거니까.



회사는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니니까

이제는 이런 대화와 삶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 중심, '감정' 중심으로 일을 바라볼 때가 있다. 콘텐츠 마케터인 나는 회사에서 광고와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한다. 기획안을 짜는 와중에 보고서를 멀끔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건 그냥 내가 재밌을 거 같아서 만든 거라는 느낌이 쎄게 온다.


반면 대리님은 명확한 근거가 있는 콘텐츠를 짠다. 예를 들어, 지난 광고 영상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 요즘 트렌드에 적합한 것, 한 유튜버의 영상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 등등. 대리님이 다양한 근거와 함께 콘텐츠 제작 방향성에 이야기해주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진짜 배워야 할 태도는 이런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겐 너무 정확한 그대,,


결국 내가 생각한 콘텐츠는 나의 재미를 위한 것이었고, 대리님이 생각한 콘텐츠는 회사의 방향성, 조회수, 파급력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일 바라보기

직장생활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나날의 연속인 것 같다. 보고서를 쓸 때는 보고서를 보게 될 상사의 뇌에 그림이 그려지게 써야 하고, 광고를 기획할 때는 이 영상을 볼 상대방이 3초 안에 매혹되게 짜야한다. 썸네일을 제작할 때는 클릭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할 때 역시 상대방이 원하는 걸 파악하고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을 할 때도 나의 행복과 재미보다 회사에 이익이 되는지를 위주로 판단해야 하고, 나의 슬픔과 분노는 끌어들이지 않을수록 좋다.


내 중심으로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나 하나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자꾸만 새로운 제품, 인간, 트렌드를 파악하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2초정도만 생각해요


참으로 신비한 어른의 삶과 직장생활. 앞으로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그나저나 제목은 enfp의 직장생활이라 썼는데, 너무 나 중심의 글을 써서 읽는 사람이 어이가 없을 것 같다. enfp분석 글 바라셨으면 경기도 오산입니다만 그게 엔프피 매력 아니겠어요?


여하튼 오늘도 고객 중심의 사고는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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