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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Mar 15. 2023

제법 워홀스러운 하루

이러려고 굳이 한국을 떠난 거니까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고 쓰는 글.



겨울 밴쿠버는 ‘레인쿠버’라고 불린다. 겨울 내내 비만 내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독 비만큼 눈도 많이 내렸지만, 대체로 흐린 날씨는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보통의 가정집들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함께 사용하고, 내가 머무는 쉐어하우스에도 건조기가 있다. 아마 건조기가 없다면 빨래는 꿉꿉한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건조기는 써본 적 없는데, 여기 와서 처음 한 것들이 많다.






어제는 룸메이트 Sara와 집 근처 파크를 걸었다. Sara는 중국계 캐내디언으로 다른 마을에 살다가 밴쿠버에 온 지 6년이 넘었다. 비가 촘촘 따리 내려 나는 우산을 썼는데, 6년 넘게 밴쿠버에서 살았던 Sara는 쿨하게 그냥 맞으면서 다녔다. 자잘한 비에 익숙한 캐나다 사람들은 비를 잘 맞고 다닌다.


나는 Sara와 대화할 때면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를 발견하고, 피식피식 웃으면서 그 차이를 설명하곤 했다.


“캐나다 사람들은 'How are you', 'Good afternoon'이 인사라면, 한국은 '밥 먹었니?'가 안부를 묻는 말이야.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밥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


Sara는 “Interesting~”하며 흥미로워했다.


흰구름과 먹구름이 섞인 밴쿠버


공원과 날씨, 밴쿠버의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자연을 칭찬하며 스몰톡을 주고받던 중 Sara는 타국에 와 생활하는 너는 정말 “brave”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 걸그룹 ‘brave girls’의 롤린이 생각났지만 롤린을 추진 않고, 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하하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지만, 일을 하며 느끼는 외노자의 고됨을 덧붙였다. 요즘 내가 느끼는 어떤 한계들을 말이다. 또한, 외국의 생활과는 별개로 나는 한국 사람인지라 나이의 압박을 느끼고 있고, 한국에 가서 뭘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Sara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지만, 나보다는 나이가 많다. 그래서인지 Sara는 자신보다 어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의아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내게 말했다.


“나도 종종 settle down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


캐나다는 면접에서 나이를 묻지 않는다. 나이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줄곧 살았던 Sara는 내 마음을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Sara 역시 어딘가에 정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에 대한 압박, 어느 나이가 될수록 정착해서 둥지를 틀고, 하나의 형태를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만국 공통인 듯싶었다.



날씨가 어느 정도 개고, 나와 Sara는 스카이트레인을 탔다. 그리고 밴쿠버의 커다란 식자재 마트, 홀썸 푸드 마켓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갔다. Sara는 브리또를, 나는 초코 바나나 머핀을 들고 커피를 한 잔 하며 각자 할 일을 했다.


집중을 하다 이어폰을 빼고 Sara는 요즘 유행하는 한국의 <더글로리>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고, 나는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 드라마 <Ashley garcia>를 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근황과 사소한 관심사를 주고받았다.


JMT!!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영어 대화에 스스로 감격하고 있을 무렵, 나는 Sara에게 어니스트 아이스크림 가게를 좋아하냐 물었다. Sara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밴쿠버에서 6년 넘게 살았는데 어떻게 모르지?’싶으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다음 대화로 넘어갔다. 그렇게 몇 분 후, 내 핸드폰 뒤에 꽂아진 어니스트 아이스크림 프로모션 쿠폰을 본 Sara는 말한다.


“와 나 여기 진짜 좋아해. 파인트 2개 사 먹었어!!”


나의 어니스트 아이스크림 발음이 심히 안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어니스트를 “암스트롱”으로 들었던 것일까. 알 순 없지만 뭐, 영어로 대화하며 이 정도의 불통은 자주 생기는 것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신 '최근에 가봤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말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생기지만 Sara와의 대화는 그냥 편한 친구랑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Sara는 나의 서툰 영어 대답이나 발음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기다리고, 들어주고,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대답하고, 생각하고, 검색했다가 조금 더 솔직한 내면을 설명한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과 적당히 달콤한 초코 바나나 머핀, 그리고 Sara의 정직한 영어 발음을 듣자니 제법 워홀스러운 하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워홀스러운 하루.


이런 날은 워킹홀리데이를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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