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은 파괴적이기도 한 휘발성에 대하여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예전부터 쓰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엔 절망이 없다.
정지우 작가님의 책 제목이다. 흠, 쓰기도 전부터 ‘얜 뭐야’ 하며 친구들한테 놀림받을 것 같다.
은근 자주 하는 고민 중에 '인스타그램 본계정을 지울까 말까'가 있다. 진짜 올리고 싶은 사진과 말들은 올리지 못하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계속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확히 누구를 의식하냐 묻는다면 지목할 대상도 딱히 없다.
친구가 인스타그램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타인의 근황을 보면 자꾸만 비교하는 마음이 든단다. 남들이랑 비교 안하고, 시골로 들어가고 싶단다. 나도 따라가고 싶다. 하지만 우린 알지. 시골 사람들도 인스타그램 열심히 하는 세상이다. #시골라이프
그럼 그까짓거 지워버려! 할 수도있다. 근데 없애는거? 쉽지 않다. ‘에잇! 오늘은 지워야지’ 하고 들어가면, 6개월 전 일하다 잠깐 알게 된 사람의 스토리가 뜬다. 그 사람 스토리를 가만히 보다 ‘이 사람이 예전에 자기가 근무하는 카페에 갔더니 공짜 치즈 케이크를 줬지..’ 하며 추억에 젖는다. 좋았던 느낌을 회상한 후 지우지 않기로 한다. 우리가 연결된 유일한 sns가 인스타그램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간이 흐를 수록 연락을 안하게 될 지라도.
반면, 본계정을 지우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다.
본계정 속의 나는 내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진솔한 내 감정과 이미지가 아닌 ‘행복해 보이는’ 사진만을 위주로 올렸다. 우울과 부정의 마음을 가까웠던 혹은 가까운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구와 팔로우가 되어있든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타인과의 비교도 있다. 시절 인연의 근황을 볼 때, 종종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곤 했다. 또한 멀어진 타인의 근황이 행복해보이면 불필요한 감정을 헤매는 시간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읽었다. 이 인터뷰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느꼈던 헛헛함을 진단할 수 있었다.
저는 짧은 문장으로 과연 얼마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소설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랜시간 가다듬고 독자에게 스며들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문장으로 만들어진 것도 곧바로 로지컬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기 마련이어서, 며칠 몇개월 몇년인가를 거듭해 겨우 의미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하죠. - 문장 1개나 2개 정도로 설득하려고 하는 세계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요.
내가 봤던 타인의 사진 1장이 그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전부를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의 근황에 아파하는 시간은 실체가 없는 것 아닐까.
휘발적이지만 파괴적인 인스타그램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2주 후에 본계정은 삭제했습니다. 우려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적응해서 잘살고있어요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