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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Oct 30. 2018

세계의 끝을 향한 처음: 퍼스트 맨

데이미언 셔젤, 2018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오로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조지 허버트 리 맬러리



인간은 꾸준히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왔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에도 우리는 세계의 끝에 도달하고 싶어 했으며, 북극에도, 바닷속에도, 하늘 위에도 족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비둘기가 귀소본능에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어 한다. 귀소본능과는 정반대의 본능이지만 말이다. 

<퍼스트 맨>은 이 지점을 잘 자른 음식의 단면처럼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우선 서사의 꽤 많은 부분을 생략한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의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많은 씬들은 닐 개인의 서사를 두른 우리의 서사가 된다.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또한 그렇다. 


처음과 끝을 논하면서 삶과 죽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는 닐의 딸, 캐런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장례식 후 닐과 재닛은 나사에 입사하며 새 삶을 시작하자고 얘기한다. 나사에서는 제미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친구인 엘리엇이 불시착으로 죽게 된다. 제미니 프로젝트가 마침내 끝나고 아폴론 프로젝트로 들어섰을 때 닐은 캐런이 타던 것과 같은 그네를 본다. 닐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캐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다음 장면에서, 닐에게 캐런 이야기를 들은 에드는 불에 타 죽게 된다. 영화는 죽음과 삶을 오가면서 가파르게 진행된다. 

영화는 비행기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치고 있는 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치열한 삶에의 열의와 바짝 가까이 다가온 죽음 사이에서 줄을 타는 모습이다. 그곳에는 오직 닐밖에는 없었다. 대기권 밖으로 올라가 순간 구름을 아래로 두었을 때 펼쳐지던 밀도 높은 고독의 장면. 후에 달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왜 그곳까지 가야 했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으며, 해결되지 않은 세금과 사회 문제를 주렁주렁 달고 꼭 그곳에 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보다 먼저 도착해야 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답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왜 소련은 달에 가려고 했는가? 왜 달인가? 우리는 왜 그 끝에 도착해야 하는가?


케네디의 연설 중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는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끝으로 가기로 했다. 왜냐면, 그곳이 끝이기 때문이다. 닐은 자신이 공군 기지 시절 비행기를 몰고 올라갔던 고도에서 본 지구에 대해 말한다. 그 끝에서 보면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에드는 자신이 달에 가는 것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자라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결국, 에드는 달에 가지 못하게 되지만.) 끝은 우리의 영역을 넓혀준다. 삶의 영역을. 그곳이 끝이라고 점찍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 유영을 했고, 그래서 닐 암스트롱은 달에 갔으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화성으로 갔다.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계속 끝의 지평을 넓힌다. 계속 마지막의 마지막, 끝의 끝을 탐구한다. 좇는다. 그것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과 마주 보며 살아가고 있다. 죽음을 닮을 것을 좇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정복이 아니라 추구이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이라고 말했듯, 우리는 끝을 좇아 계속 이동한다. 화성에 발을 디디면 다음 행성으로, 다음 은하계로, 다음 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싶어 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재탄생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디뎌야만 새로운 삶이 싹 틀 수 있다. 


달의 크레이터 앞에서 닐은 캐런의 팔찌를 놓는다. 팔찌는 달의 너머로, 우주로 천천히 사라진다. 닐은 결국 죽음-삶-죽음-삶-죽음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따라 달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의 끝에 간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거기에 전부가 있었다. 죽음과 삶의 꼭지가 있었다. 고요한 바다, 달의 표면을 비추는 카메라는 아무 소리도 잡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째서 지금 끝나지 않지?'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달이 등장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닐의 족적을 따라 영화도 끝까지, 끝의 끝까지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닐의 완전히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야 크레딧이 올라온다. 고독이 올라온다. 한 세계의 지평이 넓어진 희열이 올라온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이 생겨난다. 다시 한번 더, 삶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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