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 人間

내가 당신을 돌볼 때, 당신도 나를 돌보았다.

by 서하

병원에 근무하면서 한 달 동안 밥을 먹은 횟수가 다섯 번을 넘어 본 적이 없다. 간혹 “왜 밥을 안 먹어?” 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것이다. 간호사 한 명 당 열두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 것은 화장실도 최대한 참았다가 가고 근무 중 식사를 못하는 걸 의미한다. 옆 나라 일본은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최대 여덟 명, 미국은 최대 세 명인 것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수치다. 한 번은 밤 근무 열 시간 중 간호사들이 컵라면을 먹었다고 ‘간호사들이 컵라면으로 파티를 했다’고 한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울컥했다. 중환자실 뿐 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간호사들의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병원 생활 경험이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안다. 첫 병원에서 신규간호사로 일할 때였다.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은 안부처럼 내게 묻곤 하셨다. “밥은 먹었어요?”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안 먹었어도 그냥 먹었다고 대답을 했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못 먹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깎아놓은 과일을 포크로 찍어주며 얼른 이것만 먹고 가라는 환자분, 못 먹었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해놨다며 샌드위치와 주스를 안겨주시는 보호자 분, 침상 커튼을 쳐서 외부에 안보이게 막고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서 주시는 분들, 김밥 한 줄을 얼른 유니폼 주머니에 쑤셔 넣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럴 때마다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한편으로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사했다. 가끔 간호사가 밥을 왜 먹느냐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있었지만 먼저 챙겨주시는 좋은 분들도 계셨기에 버틸 수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퇴근 할 때쯤엔 하얀색 유니폼 상의에 진한 핏방울이나 담즙 등 환자의 체액이 튀어 지저분해져 있곤 했다. 그러면 종종 나이 지긋하신 보호자 분이 내 유니폼을 보고 “아이구, 이거 빨려면 힘들 텐데. 내가 빨아다줄까? 집 가면 또 쉬고 해야지 언제 또 옷 빨 시간이 있어.” 라고 하시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 코가 시큰해졌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퇴근 할 때쯤 주차장까지 걸어갈 힘도 없어 멍하니 서있는데 “박 선생,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수고했어.” 한마디에 울음이 터지자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질 거라며 조금만 더 힘내서 오래 있어 달라고 늘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환자분, 딸도 거부한 관장을 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시며 내 손에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쥐어주시던 환자분, 명절에 일해서 가족들이 섭섭하겠다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손에 돈을 쥐어주시던 환자분, 내가 주사를 놓으면 하나도 안아프다며 너스레를 떠시던 환자분, “수술하려고 입원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 선생이 내 담당이야! 수술이 아주 잘 되려나봐.” 하면서 내 손을 잡고 껄껄 웃으시던 환자분, 본인 몸이 참 아프고 불편할 텐데도 자주 들락거리며 보는 내가 힘들까봐 걱정해주시던 환자분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간호사는 원래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업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버텨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며 사는 거 자체가 큰 형벌이라고 느꼈었다. 1000일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개처럼 울었고 그 와중에 쉬지 않고 상처를 핥았다.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하는 말이 싫다. 천사라는 의미 안에 간호사는 사람이 아니라 보다 더 숭고해야만 하는, 어떠한 불합리한 상황이나 위험한 상황에도 무조건적으로 참고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라는 사실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기쁜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을 만들어준 건 환자들이었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이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 와중에도 내게 깨달음을 주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한국 임상 환경을 떠나 훨씬 더 좋은 선진 환경에서 믿을 수 없이 행복하게 근무하고 있지만 이따금씩 예전이 생각나곤 한다. 좋지 않은 기억들보다 좋은 기억, 사랑 만을 남기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가며 오늘까지 십오회차로 에세이를 써보았다.


매번 돌이켜보아도 정말 치열한 날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돌보았고 그들도 나를 돌보았다. 나를 돌보아준 그들이 오늘 하루도 건강하기를, 나를 따듯하게 품어준 온기가 그들에게도 늘 그득하기를 그래서 지금 있는 그 곳이 어디든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keyword
이전 14화Episode 14. 절대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