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_나
어떤 직업이건 간에 다 저마다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고, 퇴사를 컨텐츠로 한 책과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동호회까지 만들어질 정도이니.
처음 병원에 입사하고 나서 두 달 동안은 한 달에 3일은 빼고 출근 전에 항상 울고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도 울었다. 어느 날은 눈물 참기가 너무 어려워 병동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부터 엉엉 울기 시작해 집까지 갔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삼 개월 이후부터는 출근 전에 울지는 않았지만 삼일에 한 번 꼴로 퇴근하면 울었다. 그리고 육개월이 지나면서 차츰 우는 날이 줄었다. 하지만 밤을 꼬박 새는 나이트 근무를 끝내고도 잠을 두 시간 이상 편하게 자지를 못했고 멍한 상태로 우울해했다. 차라리 울 수 있었으면 하고 답답해하는 날들도 있었따.
세상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신규 간호사라 아직 업무가 미숙해서 선생님들이 혼을 내는 건 이해를 했지만 업무와 상관없는 인신공격을 받을 때면 너무 속이 상하고 억울했다. 환자에게 손을 대기도 전에 환자와 보호자는 날이 선 말투와 표정으로 내 경력을 물었고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정말 할 수 있냐며 손대지 말라고 했다. 본인 몸이 아프다고 다짜고짜 쌍욕을 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야.” 라고 부르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알려주지 않은 걸 알려줬다고 무조건 우겼고 본인들 실수는 신규 간호사가 덮어쓰도록 했다. 동기들 끼리 모이면 각자 당한 인신공격과 모독, 신체적 폭력 등에 대해 경쟁하듯 쏟아냈다.
업무 후에도 각성 상태가 이어지며 쉬는 날에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몸이 개운해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소모되어갔다. 법적으로 금지된 듀티를 받았다. 오프 하나 없이 열흘을 연속으로 출근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냈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개운하지 못한 몸 상태로 환자를 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느 날은 병원 복도 끝에 보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나이트 출근을 앞둔 어느 날,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보도되었다. 긴급속보를 멍하니 응시하면서 저녁을 먹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편해졌니? 부럽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내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는 걸.
사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무시했다. 나는 그럼 바로 간호부로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이것도 못버티는데 다른 데 가서 네가 뭐 해먹고 살 거냐고 힐난했다. 그러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안그래도 인력도 부족한데 병동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이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환경을 왜 늘 나만 이해해야하나 싶었다. 그렇게 나의 사직 수순은 유야무야 되는 듯 싶다가 어느 날 근무 중,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실 베드에 간호사가 들어오자 환자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하얀 천장을 보고 누워있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마침내 내 사직의사는 수간호사를 통해 간호부장 귀에 까지 들어갔다. 간호부에서는 면담을 하러 내려오라고 했다. 간호부장은 뭐가 힘드냐며 네가 여기 나가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부모님은 아시는지, 학교 교수님들은 아시는지 물었다. 나는 스무살 중반인 성인인데 도대체 왜 내가 사직을 하는데 부모님과 교수님의 허락이 필요한지 물었다. 간호부장은 말대답을 하는 나를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나도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간호부장은 어디가서 커피나 타는 하류인생이나 살아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서도 커피는 탄다고 대답했다. 간호부장은 화가 났는지 어디가서 빌빌 거리며 커피나 타고 살으라고 했다. “네.” 하고 대답했다. 간호부장이 물었다. “네가 여기 나가서 잘 될 것 같니?”
“네. 잘 될 것 같아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 여기 말고 이제 다른 병원 가면 다 소문 나. 나중에 너 추천서 같은 거 필요하면 어떡할래? 뽑아줬으면 고마운 줄 알고 열심히 일을 해서 배울 생각을 해야지 주제에 감히 나갈 생각을 해? 네가 여기보다 더 좋은 병원을 가는 거면 안 말려. 근데 너 여기보다 좋은데 갈 수 있어? 너 절대 못 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간호부장님이시지 신은 아니시잖아요.” 나는 대답했다. 옴팡진 욕과 함께 마침내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주머니 끝이 펜에서 새어나온 파란색, 검은색 잉크로 얼룩진 간호복을 반납했다. 그리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퇴사를 하고 3개월 정도 쉬다가 그래도 한 번 더, 이 직업에 미련이 남지 않게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병원에 입사를 했다.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오류가 나면 문제의 원인을 같이 찾기 보다는 누구 한명을 죽어라 비난하고 태우는 분위기, 나이 어린 간호사들이 연차 높은 간호사들의 업무를 대신 도맡아서 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환경, 늦은 시간까지 회식 참여 강요, 환자들의 성희롱 발언과 언어폭력. 다시 전과 같이 잠을 못자고 시달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집근처 정신과를 찾았다. 큰 기대 없이 갔지만 의사선생님은 정말 감사하게도 내 이야기에 경청해주셨다. 그리고 검사결과지를 보며 '과잉 각성 상태'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며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나 자신이랑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일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천천히 호전되고 있었다. 약을 복용한 지 일 년이 넘었을 때, 약을 서서히 중단하는 걸 고려해보자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 마냥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내 사진이라는 걸 후배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내가 라운딩을 돌 때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후배는 수간호사 선생님께 그 사실을 보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내가 출근 했을 때, 나는 그 환자의 담당간호사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다시 일어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 자신에게 왜 사는지 계속 물었다. 나에게 희망은 있는지 물었다. 이렇게 힘든 게 삶이라면 굳이 계속 더 살아야 하는지 물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예전의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다가 조용히 죽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잠들어서 다시는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밤들이 이어졌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사직이라 더 빨리 끝났다. 수간호사가 부모님은 아시냐고 물었다. 내가 성인이고 스스로 생활하는데 사직에 왜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병동 인력이 부족한 거 아는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수간호사가 물었다. 병동 인력이 부족한 건 병원이 인력관리를 잘 못한 거지 그걸 왜 저한테 책임 전가를 하시냐고 물었다. 그리고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많은 간호사 후배들이 말했다. “출근 하느니 차라리 차에 치여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해요.”,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다. 전혀 변한 게 없다. 간호사들의 자살이 신문에 나고 기사에 나도 변하는 게 없다.
간호사들 뿐 만 아니라 직장생활로 힘든 모든 직장인, 그래서 삶의 의미도 뭔지 모르겠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일단 그만 두라고.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고 못살게 구는 것들에서 벗어나라고. 아무리 그 일이 당신의 입에 밥을 넣어주고 당신이 갖고 싶은 걸 손에 넣게 해주고 당신의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하더라도 나 자신의 존재에, 삶의 의미에 의문을 갖게 하면 그만두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당신 자신이다. 당신 가족들도 아니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고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한다.
어떠한 희망도 내게는 없다고 믿었었다. 얼굴이 예쁘지도 않고, 몸매가 좋지도 않고, 돈이 많은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특출한 재능도 없는 나라서 이 세상이 이렇게 나한테 가혹한가 묻고 또 물었다. 그래, 특별하지 못한 내가 죄지, 내 잘못이지 라고 자책했다. 제발 누가 나를 나 대신 사라지게 해주기를 바랐다.
사직서를 낸 이후, 마지막 근무일수를 채우며 약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내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점점 수면 시간이 늘면서 몸 상태도 더 나아지기 시작했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절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도전할 때마다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었던 시기가 지났다. '해 뜨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을 수십번 되뇌이며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하며 악착같이 버텼는데, 정말 어느 날 내 머리 위에도 따스한 볕이 들었다. 바라던 날들이 오고나니, 늦지 않게 병원을 찾았던 나의 용기에, 악착같이 버텨주었던 지날 날들에 참 감사하다.
아직도 많은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지 병원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생각보다 신체적 문제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신적 문제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진료보는 것을 꺼린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는 과감히 그 길을 버리고 나를 지켜야한다. 그럼 또 어디선가 신기하게도 새로운 길이 열린다. 부디 자신을 끝까지 지키길 바란다. 시간을 내어 본인과 대화를 나누고 연대하고 사랑하기를.
가장 중요한 건 당신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