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 희로애락_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병원은 참 신기한 곳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사람이 죽기도 한다. 기적처럼 호전되어 누워서 들어온 사람이 걸어나가는 경우도 있고 걸어서 들어왔다가 다신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된 아기도 있고 강산이 열 번이 변하는 세월을 산 노인도 있다. 최초의 만남이 있고 최후의 이별이 있다. 늘 옆에 누군가 함께 있는 사람도 있고 철저히 혼자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떠났을 때 주변사람들이 통곡을 하는 경우도 있고 놀랄 만큼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날들이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환자의 과거력을 파악하고 현재 상태를 사정하고 간호 계획을 세우고 치료과정에 함께하는 일련의 기본적인 과정들을 제외하고 개개인이 가진 이야기들이 나에게 들어오는 상황이면 나는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크고 작은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공간이 나를 피로하게도 만들었지만 내 삶에 생각해보게 되는 동기부여도 되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싶어 분노했다가 그 배경을 알게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로 마음이 바뀌며 분노가 사그라든 자리에 죄책감이 남았다. 누군가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건 싫어하면서 나도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과연 이 사람의 입장이었을 때, 나는 담담할 수 있을까,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오차 없이 올바른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남의 다리가 부러진 것 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의 고통이 더 큰 것이 인간이라지만, 인간이기에 나를 타인의 입장에 놓고 보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나도 상처를 받지 않고 상대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절대 선이었으며 앞으로도 절대 선일까. 아니다. 내 세계에서는 물론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이 최선이고 정답이지만 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상대방과 내 의견의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과정은 절대 아니었다. 나의 모서리를 깎아나가는 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환자는 한 명이 입원하지만 그 주변의 가족들까지도 최대한 케어 해야 한다. 가족들 모두가 힘을 다해 환자를 간호하고 피로한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는 걸 보면 참 애틋했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자녀이자 형제일 뿐이지만 나에게 있어 다른 포지션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어린 자녀를 간호하는 부모님들을 볼 때면 무조건적인 헌신과 내리사랑의 강력함에 전율하곤 했다. ‘자식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본인보다 항상 아픈 자녀를 우선하는 어머니들의 모습들이 나의 가장 오랜 기억들 중 하나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예닐곱 살 때 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파서 토하는데 엄마가 그런 내 등을 두드려주면서 울었고 아빠는 물수건으로 내 등을 닦아주었다.
내가 부모가 되면 어떨까. 자녀가 또 다른 내가 아님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하면서 내 자녀가 내 도움을 필요로할 때는 언제든지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보호해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든 걸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안다. 이런 나 밑에서 아이가 큰다면 참 힘들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부모가 되는 걸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애를 낳으면 다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세상에는 남보다 못한 부모들도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면.
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장 빛날 때나 가장 초라할 때나 같이 있어줄 수 있고 그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내가 기꺼이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 결혼을 하고 싶다. 이십대 중반이던 몇 년 전부터 이십대 후반인 지금까지 줄곧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다. “지금이 가장 예쁠 때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는 나이가 경쟁력이다.”, “지나고 나면 괜찮은 남자들은 다 가고 없다. 그러니 빨리 가야한다.”, “주변 친구들이 시집가는 거 보면 너도 가고 싶어질 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다 성격에 하자가 있더라.” 등의 말을 수없이도 들어왔지만 어떤 말도 나를 동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은 일이라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있어 결혼은 ‘적정 시기에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라서’ 결혼으로 수반될 모든 책임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내 의견에도 누군가는 결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하겠지만. 내 결혼을 내 주관대로 하겠다는데 남들 의견이 무슨 상관인가.
내가 ‘결혼을 꼭 할 생각은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꼭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너 아파서 입원했을 때 아니면 나중에 죽을 때라도 옆에 누군가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차이가 얼마나 큰 줄 아니?”
병원에 있는 동안 참 많은 경우들을 보았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가장 마지막의 순간에 누군가가 함께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했음에도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배신해서, 자녀가 있음에도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학대나 방임을 해서 결국 혼자 남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았다. 가족들 간의 다툼으로 가족들이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해 입원할 때 본인은 보호자가 아무도 없다며 보호자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아서 놀랐다. 오히려 평생을 독신으로 사신 분이 후에 치매로 고생하실 때, 몇 십년동안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돌본 아이가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는 물이 피보다 진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환자나 보호자들이 내게 건네는 말에는 오래된 나무 향이 느껴졌다.
“젊었을 때는 그게 소중한 줄을 몰랐어. 더 열심히 살 걸 싶어.”, “이렇게 젊고 예쁠 때, 건강관리도 잘 하고 너무 희생하면서 살지 마.”, “여자도 본인 일이 있어야 돼. 그래야 늘 당당할 수 있어. 지금처럼 그렇게 쭉 멋있게 살아요.”, “원래 그 때는 좋은 줄 몰라. 지나면 알게 돼, 사무치게.”, “선생님 어머니 아버지도 이렇게 키우셨을 거예요.”, “좋을 때야. 눈이 부시도록 좋을 때야. 모르지? 지금 얼마나 예쁜지.”,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셔? 좋겠다. 자주 뵙고 인사드려.”
내가 소모된다고 생각했다. 근무를 하면 할수록 무른 비누 닳듯 내가 닳아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힘들고 고된 만큼, 그 순간 순간 무언가 중요한 걸 얻고있다는 실감도 들었다. 그래서 버텼고 그럴 때면 늘 일기를 썼다. 다양한 개인의 역사들이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나를 생각하게도 했다. 병원 안 세상은 꾸준히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나를 크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