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하하프렌즈를 인터뷰하며
이 이야기는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시작한다. 2017년 여름, 오키나와에서 나는 그들과 마주쳤다. 내가 그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푸하하하프렌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인터뷰 기사에서 웃긴 포즈, 표정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도무지 뭐하는 사람들이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엉뚱한 프로필 컷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들의 직업은 건축가다. 물론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나 또한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들을 주시하기 시작한 건 3-4년 전이다. 당시 나는 건축 & 인테리어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건축, 디자인 비전공자라 남들보다 많은 프로젝트를 보고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며 살았다. 시간을 쏟을수록 건축이 좋아졌다. 건축은 일상 제일 가까이에 있는 예술이었다. 살다 보면 먹고사는 일에 치여서 예술 같은 건 안중에 없기 마련인데 건축은 그 안을 걸을 수도 오를 수도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실 수도,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해갈되지 않는 답답함도 있었다. 어떤 건축물은 고혹적인 자태를 지녔지만 실질적인 쓰임새를 찾기 어려웠다. 실용성을 강조한 어느 공간은 너무 노골적으로 사용법을 일러주는 듯했다. 작품이 제품이 될 수 없고, 제품이 작품이 되기 어려운 것처럼. 그런데 푸하하하프렌즈가 만든 공간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그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했고 아키데일리 같은 플랫폼에서 그들의 이름을 발견할 때면 괜스레 반가웠다.
오키나와 휴가를 다녀온 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그들의 건축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지만, 건축지를 떠난 나는 그들을 인터뷰할, 데스크를 설득할 구실이 없었다. 때마침 편집장님이 성수연방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다. 다른 취재를 위해 내려간 부산에서 대략적인 인터뷰 일정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명절 연휴 광화문의 한 영화관에서 이어진다. 인터뷰를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다. 영화 <가버나움>을 보러 간 길이었다. 영화관에서 세 명의 소장님 중 한 사람과 마주쳤다. 대뜸 인사를 건네기도, 그렇다고 시선을 거두기도 뭐한. 상영관으로 들어서니 그는 내 앞줄 대각선 자리였다. 영화가 끝났고 나는 대성통곡을, 그는 조금 훌쩍인 것 같아 더 이상 알은체 할까?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곤 광화문 사거리 신호등까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건축제, 전시장도 아닌 여행지, 영화관에서 건축가를 만난다는 건. 얼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후 인터뷰를 앞두고 매니저님, 소장님과 잠깐 통화를 나눴는데 입이 어찌나 근질거리던지. 아무튼 우리는 "집"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약속했다. 그들의 대표적인 작업은 카페 옹느세자매, 대충유원지, 퀸마마마켓, 성수연방 등이다. 상업공간으로 유명한 건축가들과 집에 대한 이야길 나누는 게 무슨 어불성설인가 싶겠지만 그 어떤 인터뷰 기사도 기자 혼자 만들 수 없다. 기자는 듣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인터뷰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들을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의 일전 인터뷰, 대부분의 상업공간에 관한 기사를 '우라까이(다른 기사의 내용이나 핵심을 살짝 돌려쓰는 관행)'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꽤 괜찮은 대화 주제라 생각했다. 그들이 가진 "집"에 대한 개념도 궁금했고.
드디어 세 번째. 이제야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꽤 많은 주거공간 작업을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이름이 왜 FHHH 프렌즈예요?”, “셋이 무슨 사이예요?” 같은 질문은 건네지 않았다. 세 사람이 가진 집에 대한 개념, 집을 지을 때의 마음, 그들의 진심이 왜곡되는 건축 현실 같은 걸 물었다. 진지한 데 웃겼고, 최선을 다해 답을 하는데 종종 내가 해야할 질문의 길을 잃게 했다. 3시간가량이나 웃고 떠들다가 다음 미팅 약속을 훌쩍 넘긴 시간에 사무소를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저녁녘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뷰 녹음파일을 들어보니 인터뷰 내내 내가 제법 횡설수설했다. 아무래도 반가운 마음에 들떴던 것 같기도 하고.
규모와 파급력의 (엄청난) 차이일 뿐 공간을 짓는 일과 지면을 만드는 일이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한다. 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벽체와 기둥, 문단과 문장으로 골조를 세우고 동선을 짠다. 푸하하하프렌즈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내가 정한 방향은 두 개였다. 그들의 유머와 진정성.
간혹 후배들이 인터뷰 기사 쓸 때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한다. 단순하게 보면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말을 지면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기자의 역할은 제목, 전문, 발문 정도에서 멈출 수도 있다. 그와는 반대로 사실 인터뷰 기사는 좋은 질문, 답변을 재료 삼아 섬세하게 쌓아 올려야 한다. 녹취 원고를 책상에 두고 앉아 블록을 쌓듯 번호를 매긴다. '이 이야기의 앞에는 이게 오고, 이 답변은 호흡이 기니까 중간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야겠다' 같은 작업의 반복이다. 녹취원고를 열번, 스무번 읽고 또 읽는다. 인터뷰이가 여러 명일 땐 영화 시퀀스를 짜는 기분도 든다. 제목, 전문, 발문도 되도록 간결하게 쓰고 싶다. 대놓고 '이런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봐주세요'라고 구구절절 말하긴 좀 그렇다. 에디터의 일은 소설가, 시인, 예술가와는 분명 다르다. 창작의 고통 대신 마감이란 고행을 경험하고, 순수한 영감 대신 주제, 인터뷰이에게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푸하하하프렌즈는 내게 좋은 자극을 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땅과 공간 사용자의 삶에 몰두한다. 또 무엇하나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설령 그게 품을 줄이고 시간을 절약하는 방식이더라도. 누군가는 그들이 사람을 가린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그들은 사람을 가릴 수밖에 없다. "몇 평에 몇 칸짜리 집",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예쁜 공간" 같은 의뢰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요구에서 그들은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없다.
카페나 복합문화공간 같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으로 유명해지는 건, 집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사람들은 매순간 예쁜 공간을 사진 찍고 SNS에 공유한다. 하지만 좋은 설계로 지은 집에서의 윤택한 생활을 기록하긴 쉽지 않다. (그 윤택함 마저도 하얀 벽과 예쁜 오브제, 비싼 의자가 놓여야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닐까?)
건축가의 일은 물리적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감정, 관계를 짓는다. 그들이 점점 집 설계를 많이 하게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은 머무는 사람의 일상을 바꾸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좋은 공간 하나만 있으면 삶이 윤택해질 수 있거든요. 좋은 주방과 식탁이 생겨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면 그게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이 될 테고, 또 빨래나 청소를 하기 쉬운 동선이 갖춰지면 그 집주인은 다른 집에서는 절대 살 수 없겠죠.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건 상상하지 못하잖아요. 마치 죽은 이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 대개 이런 타일, 바닥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사진을 가져와요. 근데 저는 그게 그 사람의 인생을 좋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 햇볕이 잘 들어와서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에너지를 엄청 쏟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면서 "옹느세자매의 타일 벤치처럼 그들의 공간을 카피한 곳이 참 많은데 속상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다른 공간과 저희가 만든 공간이 똑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본질적인 걸 함께 고민해요. 저는 믿거든요. 그런 것들이 드러날 때는 진정성도 함께 전달된다고요. 그 차이가 클 거예요. 저희 공간을 카피한 곳은 많지만 그런 곳에서는 아무 감흥이 없어요. 또 금세 사라지고요. 사람들이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 대신,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만 고민했으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어린 공간은 그 생명력이 길다.
말미에 세 사람은 "꾸준히 진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고객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그들에게 작업을 의뢰한다. 하지만 대부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진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서. "굶으면 굶었지 이상한 일은 안 해요. 그냥 도산하면 했지. 살기 위해서 먹지는 않는다"던 그들의 배짱과 다짐이 어쩌면 지금의 푸하하하프렌즈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떤 기자들은 술자리에서 자랑처럼 ‘누구는 말이야, 걔는 말이야’라며 인터뷰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이에 대한 단상, 언급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나의 몇 마디에 그들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이 심어질까 싶어서, 때론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뒷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불쾌해서 되도록 인터뷰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푸하하하프렌즈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꼭 몇 줄의 글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종종 책이 나오고 나면 마음이 헛헛해질 때가 있다. 특히 애정 하던 주제, 인터뷰이의 글을 쓴 직후에 더더욱. 더 매만지고 다듬고 싶은데 그것들이 내 손을 떠났다. 푸하하하프렌즈의 인터뷰도 몇 교의 교열을 거쳤고 이젠 사람들에게 읽히는 일만 남았다. 마치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새 집과 건물처럼.
*푸하하하프렌즈와의 인터뷰는 스타일러 주부생활 2019년 3월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인터뷰 전문 링크 첨부합니다.
*푸하하하프렌즈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분들은 홈페이지(http://fhhhfriends.co.kr)를 참고하세요. 주옥같고도 유머러스한 글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