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지 못하면 영혼이 자라지 않은 어린 애일 뿐이야"
사전적 의미에 따라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는 상태가 순수한 거라면 어린 아이는 순수하지 않다. 사회가 순수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과도 같은 요구를 해왔을 뿐이지, 어린 아이만큼 본인의 욕구에 충실히 반응하는 존재가 또 없다. 어쩌면 엄마의 사랑을 빼앗은 형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심지어 행동으로도 옮길 뻔한(물에 빠진 형을 구해주지 않음으로써) 어느 동생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보통의 우리들의 것일지 모른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형 같은 건, 네가 그랬지, 나만 없으면 된다고, 맨날맨날 엄마한테 그랬지”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연출 박신우, 극본 조용)에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형 문상태(오정세)와 엄마를 잃은 후 그의 동생이자 보호자로 평생을 살아온 정신병동 보호사 문강태(김수현)가 등장한다.
동생 강태는 ‘내 것’이라는 형과 그에 응하여 자신의 삶은 없는 듯 형 상태바라기로 살아온 강태. 표면적으로는 끈끈한 우애를 이어온 이 두 형제의 관계는, 어느날 눈 앞에 나타난 반사회적 인격 성향을 지닌 아동문학 작가 고문영(서예지)으로 인해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강태가 문영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기도 모르게 자꾸 형을 잊고, 없는 듯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태는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휩싸이고 결국 동생 강태의, 끈끈한 우애의 깊은 바닥에 숨겨져 있던 어떤 비밀과 연결된 폭탄 스위치를 누르고 만다. 바로 어린 강태가 물에 빠진 형 상태를 모른척하고 도망치려 했던 유년 시절의 어두운 기억이다.
물론 다시 돌아와 형을 구했지만 강태에겐 내내 죄의식으로 남아 발목을 붙드는 족쇄였다. 상태는 이걸 알고, 기억하고 있었다. 강태를 곁에 붙드는 유일한 방법 또한 이 기억의 스위치를 누르는 일이란 것까지도. 그래서 다시 꿈을 꾸고 설레기 시작한 강태를 순식간에 당시의 어린 강태로 끌어내려, 문영이 아닌 자신을, 아니, 강태의 삶이 아닌 ‘상태 것’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만든다.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으니 상태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래도 어쩌나, 유일하게 자신의 것인 강태를 빼앗으려는 문영의 존재는 너무 강력하고 그에 맞설 방법은 자신에겐 단 하나밖에 없는데. 상황이 진정되었음에도 차마 강태와 맞닥뜨리지 못해 스스로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 써버리는 상태의 모습에서, 동생을 향해 어느 때는 증오로 또 어느 때는 죄책감으로 발현되는 짙고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가 상태에게서, 강태에게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미움과 눈물과 사랑에, 그리고 절망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상태와 강태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언젠가 한 번 느꼈거나 혹은 지금 느끼고 있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하겠다. 유년 시절, 자의든 타의든,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받게 된 어떤 상흔의 기억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까닭이리라.
“잊지 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은 어린 애일 뿐이야”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이야기한다.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 게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삶을 살다 보면 사랑을 하다 보면, 특히 진심을 다하려 하는 사람일수록 상처를 받고 또 준다. 그러니 잘못 태어난 사람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도 없다. 오히려 이것이 문제가 될 때는, 준 혹은 받은 상처를 맞닥뜨리거나 이겨내려 하기보다 그저 잊고 묻어둔 채 살려고 하는 경우다.
그러다, 썩 괜찮은 어른인 마냥 살다가, 어느 순간 상처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당시의 어린 아이로 돌아가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마는 것이다. 실은 전혀 괜찮지 않은, 여전히 영혼의 시간은 그 때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강태가 상태의 ‘동네 사람들, 동생이 형을 죽인다’라는 외침에 어린 강태가 되어 그런 거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이며 빌었던 것처럼.
안심할 것은 이렇게라도 문제가 발현되면 오히려 다행이다. 이제야 상처를 제대로 맞닥뜨린 두 형제에게 앞으로 남은 일은 함께 그 상처를 이겨내고 자라나는 과정 뿐일 테니까. 이는 상처를 맞닥뜨리기보다 묻어두고 숨기고 감추며 피하는 데 능숙했던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건네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는, 거대한 위로와 격려로, 이것을 끌어내어 한 편의 멋진 어른 동화로 만들어낸 작가 조용의 필력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