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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an 11. 2021

"DON'T LET GO"

'인터스텔라', 우리 삶의 '그래비티'에 관하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보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가 떠오른다. 단순히 같은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도 아니고 주인공들이 나사(NASA, 미국 항공우주국) 출신이라는 동일한 설정을 갖고 있어서도 아니다. 두 작품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력’이란 소재와 그것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1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살아가는 지구는, 오염으로 인한 기근으로 식량부족이 일어나고 있는 절망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사는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주를 꿈꾸지 않는다. 아이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식량을 생산해낼 수 있는 최고의 농부가 되기 위해 공부할 뿐이다.


어느 날 쿠퍼의 딸 머피에게 어떤 미지의 존재가 ‘중력’을 이용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한다. 메시지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따라간 쿠퍼 부녀는 나사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 그리고 비밀리에 지구인들이 정착할만한 새로운 터전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쿠퍼는 나사의 임무에 동참하게 되고 머피는 사랑하는 아빠를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우주로 보내야 하는 비극을 겪는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2


‘인터스텔라’와 달리 ‘그래비티’ 속의 지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이다. 하지만 주인공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에게만큼은 절망으로 뒤덮인 곳이다. 삶의 전부였던 어린 딸을 잃었기 때문이다. 스톤 박사에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우주는, 한없이 적막해서 잠시나마 절망을 잊게 해주는 더없이 편안한 장소다. 격추된 인공위성의 잔해가 그녀를 덮치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 '그래비티' 스틸컷1,2


결국 스톤 박사는 지독하게 적막하고 고독한 우주 공간 안에 홀로 남겨진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삶의 끝을 생각하던 그녀는, 무전기를 통해 지구로부터 흐릿하게 들려오는 삶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절망을 끌어안은 채 죽지 못하고 살아왔던 지구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실은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었음을. 딸의 죽음 주변을 뱅뱅 돌며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던 그녀가, 역설적으로,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 삶에 대한 열망, 즉 ‘삶이 끌어당기는 힘’을 경험한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말하는 ‘중력’은 삶에 대한 열망, 즉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은 스톤 박사로 하여금 무중력 상태의 삶을 살아가게 했고, 우주 공간에서의 경험은 그녀에게 중력,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아 주었으니까. ‘인터스텔라’는 이 지점에서 ‘그래비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3


머피를 떠난 쿠퍼는, 제목 그대로 인터스텔라(interstellar, 행성과 행성 사이)를 이동해 가며 임무를 마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갈 날만을 꿈꾼다. 하지만 예측 불허의 상황들은 나날이 그를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을 뿐이다.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 딸에게 약속한 대로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의 가족은 물론,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영화 ‘인터스텔라’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행성 사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작용하는 'gravity'(중력)로 풀어냈다. 쿠퍼를 끌어당기는 머피의 ‘사랑’, 머피를 비롯해 지구 위 모든 이들을 끌어당긴 쿠퍼의 ‘사랑’, 이는 스톤 박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삶이 사람들을 죽음에서 끌어당기는 힘이기도 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4,5


‘인류구원’이라는 아무리 거창한 사명도 그 속내를 살펴보면 단순하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어려운 사명을 앞장서서 짊어지고 결국엔 이루어내어 영웅에 위치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그들을 일으키고 험난한 과정을 지나가게 하며 불가능한 상황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이 ‘사랑’이 없다면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찾아오는 절망을 반복하거나, 한 평생 풀지 못할 문제를 풀어가며 살다가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비티’는 우주 공간에 대한 공포감보다 온 힘을 다해 대기권을 통과한 뒤 땅에 입을 맞추는 스톤 박사의 모습을 짙게 남겼다. 마찬가지로 ‘인터스텔라’는 시공간을 넘나들면서도 오로지 딸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중력’에 빗대며 인상 깊게 그려냈다. 단순히 섭렵한 과학적 지식들을 나열하려 한 영화가 아니었단 소리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갖가지 과학이론들의 혼재 속에서도(심지어 허점도 있지만), ‘인터스텔라’가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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