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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an 15. 2021

더 이상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칠드런 오브 맨,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어”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1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배경은 서기 2027년, 더 이상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불임’의 세계다. 세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의 나이가 18살, 그마저도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지구는 한 발 더 빠른 걸음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중이고, 그리하여 생기가 없는 바짝 마른 세상에서 남은 희망은 그저 ‘평온한 죽음’, 텔레비전을 켜면 버젓이 흘러나오는 자살약 광고의 카피라이트이기도 하다.


주인공 테오 패론(클라이브 오웬)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쟁과 폭동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지 오래, 다행히 영국인인 그는 국가의 영향력 아래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죽기 전까지 삶을 부족하지 않게 연명해줄 약간의 ‘돈’ 뿐이다. 더없이 그리웠던 옛 사랑 ‘줄리엔’(줄리안 무어)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2,3


이민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피쉬단 리더가 되어 찾아온 줄리엔은, 그에 걸맞은 부탁 하나를 테오에게 건넨다. 불법체류자인 흑인 소녀 ‘’(클레어- 애쉬티)들이 목적하고 있는 안전한 곳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평온한 죽음만을 원했던 평소의 테오라면 절대 응하지 않을 건수이지만 줄리엔 때문일까.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뒤바뀔지 차마 예상조차 하지 못한  흔쾌히 받아들인다.


알고 보니 키는 임신한 상태였고 줄리엔은 이 소녀와 배 속의 아기를 보다 안전한 장소인, 생명의 탄생을 이어가기 위한 연구단체로 추정되는 ‘휴먼 프로젝트’에 보낼 계획이었다. 키의 아이는 분명 온 세상이 기다려온 기적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욕망의 대상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피쉬단의 입장에서만 보아도, 영국인도 아닌 이민자에게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다니, 새로운 권력구도를 형성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야말로 활용성 높은 매개체 아닌가.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4,5


줄리엔은 곧 태어날, 더없이 사랑스러울 아기가 어디에도 이용되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기를, 그래서 기적이 변질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져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래를 선사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길 바랐다. 문제는 대부분 말로만 들었지 아직 그 누구도 ‘휴먼 프로젝트’의 실체를 맞닥뜨린 적이 없고, 그에 비해 도처에 존재하는 절망은 너무 생생하다는 것. '휴먼 프로젝트'의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테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키의 생명을 품은, 부풀어 오른 배가 테오에게 안긴 경이로움은 모든 의심과 불신을 무너뜨리기 충분한 것이었고, 무기력하던 태오의 얼굴엔 어느새, 아기의 생명을 이 죽음을 앞에 둔 세계에 안착시킬 수만 있다면, 심을 수만 있다면 설사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 없다는 강인한 생기가 실려 있다. 이를 위해 간단한 슬리퍼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한 그는, 오로지 키와 그녀의 아기가 안전하게 ‘휴먼 프로젝트’에 도달하는 데 집중할 따름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6,7


"키, 네 아기는 기적이야, 온 세상이 기다려온“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어.”


키와 그녀의 아기를 데리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테오는 수많은 얼굴들을 접한다. 키의 임신한 배를 마주했던 자신의 것과 아주 유사한, 오랜 세월 새 생명이 움트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찬 얼굴들. 심지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죽고 죽이는 대치상태에 있다가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일제히 모든 행동을 멈추고 바라보는데 순간 분노와 절망만이 배어 있던 얼굴에 사랑 가득한 환희의 빛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컷8


여기엔 ‘칠드런 오브 맨’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키와 그녀의 새로운 생명을 목적지에 다다르게 한 힘은, 어떤 강력한 무기나 육체의 힘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테오와 줄리안을 비롯한 수많은 얼굴들, 키의 임신한 배에서, 그녀의 아이에게서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생의 경이로움을 맞닥뜨린 얼굴들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평온한 죽음’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으나 실은 죽음 따위 평온하지 않아도 되니까 삶과 삶이 이어지며 지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키와 그녀의 아기를 끝끝내 보호해냈다 하겠다.


아이의 웃고 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세상, 태어난 아이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에서 설정한 2027년이란 시간에서 느껴지는 현실감만큼 그리 머지않은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칠드런 오브 맨’이 담아낸 아이의 소리가 끊긴 적막하고 황폐한 시간과 기어코 그것을 뚫고 나온 아이의 웃음과 울음소리, 이를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에 실린 감격을. 그래야 영화와 같은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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