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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Feb 15. 2021

공동체는 공동체로 치유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무너진 혈연 공동체의 울타리를 메우는 법


젊은 날 다 지나갔다며 대충 살다 저 세상 가겠다는 나이지만, 모여 즐길 줄 모르는 것 아니다. 오히려 시간 되고 마음만 맞는다면 자신이나 상대방이 처한 사회적 위치나 사연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무릎을 맞대고 앉아 남 부럽지 않은 흥을 만끽한다. 여기에 좀 더 맛깔나게 하는 요소를 더한다면 모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월을 거슬러오를 만한 활력을 더할 젊은 친구 한 명 쯤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1


2020년 봄에 방영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온전한, 그러니까 우리의 인식 속에 박혀 있는 일반적인 틀을 갖춘 가정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미혼이거나 이혼을 했거나 배우자를 잃었거나 하여 홀로 있게 된 혹은, 자녀나 늙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형태로,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공동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가정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가까운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어느 공동체에도 속해 있지 않은 건 아니다. 가족만큼 가까운 대학 동기들, 아니면 유년 시절부터 알고 지낸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 건너건너 알고 만난 사이지만 어느새 사사로운 정이 돋아난 관계 등,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정과는 사뭇 다르나 몸과 마음을 부대낀다는 면에선 또 비슷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갈 의미를 찾고 다져 나간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


일례로, 소아외과 조교수 정원(유연석)과 그의 모친 로사(김해숙)가 소집한 모임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병원 이사장이자 로사의 일명 ‘불알친구’ 주종수(김갑수)와 그의 사촌 동생이자 병원장인 주전(조승연), 그리고 정원의 친구 석형(김대명)의 모친(조영혜)까지, 혈연이기도 하고 혈연이 아니기도 한, 제각각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모인 이들은 함께 국수를 만들어 먹고, 종수가 손자 때문에 배워야 한다는 마피아 게임을 함께 해 보며 웃고 떠든다.


여기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할 대상은 석형의 모친이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바람 나고 아끼던 딸은 갑작스런 사고로 죽었으며 그 여파로 아들은 이혼하고 자신은 병까지 얻은 이 기구한 여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드리 헵번처럼 꾸미고선 얼굴 만면엔 다소 어색하고 낯선 표정을 띤 채로 등장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무렵의 그녀는 입가에 한껏 편안하고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얼마만에 터뜨려 본 함박웃음인지 모르겠다는 후한 후기와 함께 재참여의 의지까지 다지는 것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3


이 별스럽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공동체가 얻어낸 별스럽고 대수로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생을 바쳐 다져온 공동체, 가족에게서 받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 질기고 질긴 소속감인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버팀목이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 질기고 질긴, 소속감의 첫 시작점인 가정의 울타리가 맥 없이 무너지는 오늘을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의 살기가 이전보다 만만치 않고 더 만만치 않아질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일 터.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는 혈연 공동체의 공백을 메워주고 무너진 울타리를 보완해줄 또 다른 공동체가 절실해질 수밖에 없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아주 좋은 표본들을 제시해주었다 하겠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내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향한 각별하고도 애잔한 시선이 그러한 현실을 성실하게 반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려는 일련의 태도와 맞물렸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세계와 세계의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져, 석형의 모친처럼 간만의 미소 띄운 얼굴로 돌아올 두번째 시즌을 기다리게 된, 진짜 이유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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