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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an 02. 2021

괴물이 되지 않는 괴물의 '스위트홈'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거래요"


괴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다.

‘스위트홈’에 의하면 괴물은 외부에서 침투한 괴이한 생물체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짙은 어둠에서 태어난, 우리의 또 다른 민낯이다. 이들에게 잡아 먹히면 괴물이 되는 것이고, 버티어 끝끝내 인간으로서 살아남으면 설사 괴물이 된다 해도 끝끝내 괴물이지 않을 수 있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트 '스위트홈'1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은 가족을 잃고 자살만 생각하며 살던 은둔형 외톨이 차현수(송강)가 어느날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괴이한 세계와 맞닥뜨리고 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당연한 맥락이긴 하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차현수’의 존재다. 첫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또한 괴물화 증상을 보이는 까닭이다.


즉, 앞장서서 괴물에 맞서고 맞서야 하는 작품의 주인공이 이야기 초반부터 괴물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괴물들처럼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잃고 겉과 속이 모두 흉측하게 변하진 않는다.

내부로부터 강하게 솟아나는 괴물성과 싸워 버텨냄으로써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괴물이 되지 않는 괴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수의 특이성이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트 '스위트홈'2


괴물화가 진행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하고 괴물의 목소리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현수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가 지녔던 어둠이 특별히 덜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으나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 고통을 홀로 짊어진 채 방안에 틀어박혀 원망과 후회, 자책 속에서 살았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의 삶이었으니까.

누구보다 짙은 어둠이 현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게 당연했다.


결국 괴물이 될 징조가 나타나고 정말 죽어야할 때가 왔나 싶은 그 순간, 괴물로부터 공격을 당할 위험에 처한 두 아이의 살려달라는, 누가 좀 도와 달라는 목소리가 현수의 두 귀에 들어온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몇 없는 소지품 중 하나인 컴퓨터 모니터를 괴물을 향해 던지면서 현수의 내면에 그 자신도 눈치 못챌 만큼 흐릿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야 할, 살고 싶은 이유가 돋아나게 되는데, 이것이 현수가 안에서 울려퍼지는 괴물의 목소리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라 하겠다.


넷플릭스 공식 포스트 '스위트홈'3


타인을 살리겠다는 열망이 ‘나’의 살고 싶은 열망과 직결되어 내부의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 이는 작품 속에서 현수가 자신에게 던져진, 괴물화로부터 어떻게 버티냐는 물음에 ‘살고 싶었다’라고 답하는 대목을 통해,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중에서 타인의 생명을 귀하게 여긴 이는 대부분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고 설사 괴물이 된다 해도 무해한 형태로 남는다는 것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나고 발견된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거래요."


‘스위트홈’이 차현수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법, 설사 괴물이 된다 해도 되지 않고 끝끝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법은 바로, 가장 흐린 빛, 기어이 살아가야 할 아주 작은 이유 하나라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흐린 빛은 누군가와 진심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부여받는 것이다. 혼자서는 얻기 힘든 것으로, 괴물에게 온전히 잡아먹히거나 혹은 누군가는 진화라 할지 모르겠다만 괴물 그 자체가 되거나 할 뿐이다. 현수가 이용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사람들과 함께 하려, 함께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이유이지 않을까.


넷플릭스 공식 포스트 '스위트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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