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로스쿨 간 이유를 알려 주려고, 딱 너 같은 법조인 안 만들려고”
tvN ‘빈센조’(연출 김희원, 극본 박재범)는 사회의 악을 막고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각 개인으로 하여금 힘을 합쳐 하나의 거대한 연합을 형성하게 했다. 이의 반론일까. JTBC ‘로스쿨’(연출 김석윤, 극본 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테두리를 지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을 등장시켜 법이 지닌 본래의 유의미한 힘을 회복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법보다 마피아의 의리가 더욱 설득력있게 묘사되는, 어쩌면 비도덕적 구조라 할 수 있는 ‘빈센조’가 많은 이들의 애정과 지지를 받았던 데에는 사법제도에 불신이 가득한 오늘 우리의 현실이 한 몫 했다. 썩지 않을 거라 믿은, 아니 스스로조차 신선하다 자부한 검사가 본인의 야망을 위해 누구보다 지독하게 썩어버리는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그다지 놀랍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최악인 건 결국 신선한 부분도 썩게 된다는 거죠.”
‘로스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대 로스쿨이란 가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로스쿨’의 세계에도 썩은 법조인들은 어김없이 다수로 존재하여, 함께 썩기를 거부한 소수의 신선한 이들은 일찌감치 도려내진 상태다. 와중 몇명은 명망 높다는 한국대 로스쿨의 교수 자리를 얻어 차세대 법조인들을 올바르게 키워내려 하나, 주인공인 로스쿨 교수 양종훈(김명민)이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손목에 수갑을 차는 장면을 맞닥뜨리고 보니 이마저도 수월하지 않은 게다.
하지만 ‘빈센조’에 법의 경계를 제 마음대로 넘나드는 무법적 존재 마피아가 있었다면, ‘로스쿨’에는 법을 제대로 알 뿐 아니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썩은 이들이 쓰는 꼼수에 정수로 맞대응하는 뼛속까지 법조인인 양종훈이 있다. 자신이 동료 교수의 죽음에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조차 수업의 일환으로 삼아 버리는 담대함마저 갖춘 그는 절대 타협도 회유도 되지 않아, 상대편에서 보았을 땐 되도록 상종하고 싶지 않은 지독한 인물이다.
물론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 해도 용의자로 몰린 상황이 그리 달갑진 않을 터. 썩은 이들에 의해 잘못 사용된 법이 무고한 죄인들을 얼마나 간단하게 양산해 내는지 모르는 바 아닌 데다가, 흠이 될까 쉬쉬해도 모자랄 판에 손수 자신의 재판 현황까지 공유할 정도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교수직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쉽게 넘어가 준다거나 당해줄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다. 오히려 동료교수의 죽음 아래 위치한 거대한 비리의 빙산을 제대로 파고 들었으면 파고 들었지.
“굳이 로스쿨 간 이유를 알려 주려고. 딱 너 같은 법조인 안 만들려고.”
어쩌면 누구보다 법의 정의, 올바르게 작용했을 때 가지는 법의 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그래서 거대 권력에 맞선 그의 사투는, 이미 패기를 잃었거나 꺾인 혹은 변질된 현 법조인들이 아닌, 아직 법조인으로서의 푸릇한 생명력을 지닌 예비 법조인들의 활약과 함께 진행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판은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전개를 보이고 있지만, 덕분에 그간 불한당 같은 이들에 의해 명예가 실추되었던 법은 제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하필 건드려도, 홀로 신선하다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지언정 썩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세상에 몇 없을 꼴통 중의 꼴통 양종훈과 그에 뒤지지 않을 그의 꼴통 제자들을 건드리다니, 상대는 제 무덤 판 격이나 다름 없다. 거대한 비리의 일각이 이들의 손에 놓여진 이상, 그 뿌리가 뽑혀 제거되기 전까지 자신들이 익혀온, 법이 지닌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절대 놓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이 과정은, 법을 휘두르지도 그렇다고 마피아가 될 수도 없는 보통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모양새를 회복한 법을 새삼스레 인지하고 만끽하게 할 테니, 어차피 썩은 사과라는 일갈에 이만한 성공적인 항변이 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