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아니라 강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어요.”
금가프라자에는 보통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엔 별 다를 바 없는 상가 사람들이지만 들춰보면 전직 해커에다 현 국정원 요원, 힘깨나 썼던 무도인 혹은 건달 등, 범상치 않은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빈센조’의 세계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수월히 헤쳐 나가는 동력으로서 작용한다.
tvN ‘빈센조’(연출 김희원, 극본 박재범)에서 표면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보통이 아닌, 범상치 않은 인물은 단연 ‘빈센조’(송중기)다. 이탈리아 거대 마피아의 변호사로, 그것도 ‘콘실리에리’(마피아 패밀리 보스의 고문)로서의 위치에 있었으니 말 다한 셈. 이렇게만 보면 별다른 조력자 없이 홀로 충분히 ‘빈센조’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만, 빈센조의 통쾌한 승리는 절대 그 혼자만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긴 우리가 도움이 되어 봤자 얼마나 되겠어요.”
이 특별한 인물 곁에,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실 외양 상으론 평범 이하로 보이는 사람들, 심지어 비둘기 무리까지 함께 하는데, 홍유찬 변호사(유재명)가 교량이 되어 돋아나기 시작한 진한 우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구원하며 ‘빈센조’의 세계를 완성해 간다. 일방적인 보호자와 피보호자로서 출발하여 이야기가 쌓여가며 점차 쌍방의, 동등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강자의 시선에 세뇌되어, 스스로를 무력하다고 그러니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다고 여긴 이들이 홍유찬에 이어 빈센조라는 구심점을 맞닥뜨리며 본연의 모습과 힘을 재인식한, 혹은 드러낸 결과다. 와중엔 단지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누가 봐도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존재 또한 보통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저 보통의 사람은 없다고, 저마다 삶의 고유하고 특별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그동안 우리가 약자인 줄 알았는데 약자가 아니라 강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어요.”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폭력을 가하는 강자에게 보통이 아닌 반격을 가한다. 그야말로 일상의 영웅들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이 얼마나 환상적인 동시에 실제적인 그림인가. 외부의 현실이나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는 이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뿐더러 조금의 두려움도 주지 않는다. 그 잣대조차 힘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왜곡시켜 놓은 줄 아는 까닭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비뚤어진 강자와 맞붙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거대 범죄조직에 몸 담고 있었고 총기까지 소유한 이와 협력해야 하는, 어둠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 외에 별 수가 없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참 안쓰러운 바는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처한 작금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이 비뚤어진 강자들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저질러도 제재를 받기는커녕 법 자체를 제 입맛에 맞게 굴려버리지 않는가.
“변호사님, 저희 다 까사노 패밀리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힘의 논리를 따르고 있으니, 빈센조가 콘실리에리였다는 소식에 두려움이 아닌 반가움의 의사를 표하고 자발적으로 그의 ‘패밀리’가 되기를 자처하는 금가프라자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 또한 자연스레 동조되는데, 이렇게라도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우리들이 강자의 압제와 폭력으로부터 통쾌하게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빈센조’의 세계가 빈센조의 힘만으로 구할 수 없을 뿐더러 그럴 수 있도록 구축되지도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빈센조를 통해 동기부여를 받고 제 힘을 자각한 보통 사람들의 보통이 아닌 반격이 승리와 구원의 한 축을 이루면서, 마피아의 휘황찬란한 무용담 등이 가져올 자극적인 흥미요소들을 상쇄시키는 동시에 ‘빈센조’가 결국 말하고자 했던 바, 약자와 강자가 있는 게 아니라 약하다 세뇌된 이와 강하다 착각하는 이가 존재할 뿐임을, 천상천하 유아돈존은 절대 패밀리를 이길 수 없음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빈센조’ 특유의 실제적 매력으로, 많은 이들이 ‘빈센조’의 세계에 반한 이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