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격하는지혜 Jun 24. 2021

‘라켓소년단’ 주변엔 좋은 어른들이 있다

좋은 어른들이 만드는 아이들의 좋은 세계


라켓소년단 우리가 남몰래 좋아했고 그리워하는  시절을, 제목만큼이나 정감 있고 맑게 담아낸다. 그래서 동일한 시간대로 설정된 이야기임에도 우리는 종종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서글픈 상황을 맞닥뜨리곤 하나, 동시에 그러므로 더욱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다.


SBS '라켓소년단'1


작품의 주된 맥락을 이끄는 아이들의 면면부터 그러하다.  SBS ‘라켓소년단’(연출 조영광, 극본 정보훈)의 윤해강(탕준상)은 아버지의 사람 좋은 성격으로 서울살이가 고단해지면서 잘 다니던 학교와 야구부를 떠나, 별안간 해남의 땅끝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다. 당연히 그토록 좋아하는 야구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해강은 놀랍게도 여느 아이들처럼 심각하게 어긋나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불만은 표시하나 어느새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적응할 뿐이다. 해강이 전학을 간 학교의 배드민턴부 주장 방윤담(손상연)은 또 어떠한가. 알고보니 배드민턴계의 신동 해강의 등장은 에이스였던 윤담에게 있어 마음에 거슬릴 무엇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사안이었을 테다.


하지만 윤담은 그간 참가선수가 부족해 포기해야 했던 대회를 해강의 합류로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배드민턴을 함께 좋아할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꿍꿍이나 사심 하나 없이, 그러한 생각을 품은 우리로 하여금 모종의 죄책감마저 들게 할 정도로, 좋아하고 또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SBS '라켓소년단'2


나윤찬(최현욱), 이용태(김강훈)도 다르지 않다. 배드민턴을 하는데 있어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윤찬과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 힘든 자연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용태는, 비슷한 자리에 위치하는 서로의 결핍 때문인지 ‘라켓소년단’ 중에서도 유독 돈독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 돈독함이란 게 어쩔 수 없이 라이벌로서 서로를 맞닥뜨려야 할 때도 발동되니 가족과 진배없는, 아니 가족보다 더 깊고 강력한 유대관계다.


그러니까 이 네 명의 아이들, 중학생들은, 오늘 어른이 된 우리가 으레 혀를 차며 일컫다 걱정어린 소리로 종결되고 마는 오늘의 아이들, 청소년들과 다른 양상을 띤다.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세계가 조금도 침범하지 않은 이들은, 그 옛날 왕성하게 존재했을지 모르나 오늘에 이르러 멸종되었을 게 분명하여, 앞서 언급한 ‘라켓소년단’의 판타지성을 부각시키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허나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라켓소년단’에서 이들의 존재를 단순히 허구의 결과로만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라켓소년단’은 아이들이 멸종을 피할 수밖에 없도록 도울 환경을 충분히 개연성 있고 현실감 있게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이냐면 바로 아이들 주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곳마다 포진되어 있는 ‘좋은 어른들’이다.


SBS '라켓소년단'3


해강의 아버지이자 ‘라켓소년단’의 코치인 윤현종(김상경)은 표면적으론 배드민턴에 크나큰 열의가 없고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을 가지는, 못미더운 어른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속내는 합숙소가 없어져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 집에 들여 따뜻한 밥상을 차려줄줄 아는, 깊고 따뜻한 마음이 들어앉아 있다.


해강의 어머니이며 현종의 아내인 동시에 해남제일여중 배드민턴부 코치인 라영자(오나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맡은 아이들에게 배드민턴 실력이나 그에 따른 결과만 강조하지 않고 여자로서 혹은 사람으로서 앞으로 겪을지 모를 어려움들을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 않게끔 하나부터 열까지 섬세하게, 그야말로 코치를 한다.


여기에 자신의 사비를 들여 아이들을 대회에 출전시킨 배감독(신정근)과 아들이 부담될까 티나지 않게 응원하려는 윤담의 아버지, 표현은 툴툴거리는 방식이어도 살뜰히 챙겨주는 해강의 옆집 할머니 등에 이르기까지, ‘라켓소년단’ 주변에는 좋은 어른들 천지다. 이 속에서 아이들은 쉽게 엇나갈 수 없음은 물론, 견고한 정서적 기반을 얻으니 후에 맞닥뜨릴 못 믿을 어른들의 향연 속에서도 제 내면을 쉽게 내주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SBS '라켓소년단'4


즉, ‘라켓소년단’의 판타지란 오늘도 여전히 가능하고 있을 법하다. 그러니 서글퍼하기보다 오늘의 우리가 좋은 어른이 되어주자. 적어도 우리 주변의 아이들만큼은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세계를 거뜬히 이겨낼 존재로 자라나, 적어도 그들이 자리한 어느 정도의 영역만큼은 또다른 모습의 ‘우리가 남몰래 좋아했고 그리워하는 그 시절’이 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SBS '라켓소년단'5


이전 07화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