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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11화

앉으면 나온다. 글을 쓰게 하는 세 가지 마법의 도구

by 해리포테이토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멋진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 등이 있다한들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손을 움직여야 하며 눈에 보이게 문장을 꺼내놓아야 하며 맘에 들지 않더라도 계속 문장을 꺼내야 한다.



며칠 전이다.

오늘 너무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고 친구가 말한다. 나는 어떤 꿈이냐고 묻는다. 나는 꿈얘기 듣는 걸 좋아한다. 재밌어서.

"내가 변기에 앉아 있는데 오빠가 두 손을 턱에 받치며 나를 빤히 보는 거야. 내가 보지 말라고 하는데도 웃으면서 계속 보는 거야. 신경질날라 했어."

"그래서 똥을 눴어 안 눴어?"

"누긴 눴어."

"나는 똥 누는 꿈 꾸면 글이 잘 써지더라. 오늘 글 쓰면 잘 써질 거야."

친구는 그날 의자에 딱 앉아서 집중을 했고 멋지게 글을 써냈다. 똥을 잘 누고 난 다음의 시원함과 창조해 낸 것에 대한 뿌듯함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꿈속의 오빠가 웃던 것처럼. 기분 나쁜 꿈이 기분 좋은 꿈이 됐다.



한 십 년 전쯤인가. 꿈에서,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고 앉자마자 똥을 누었다. 그냥 똥이 나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하! 고민한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미리 생각하지 않는 거구나. 하긴 글이 계획대로 써진 적도 별로 없었지. 그러니 일단 앉고, 그냥 마주하면 글이 나온다는 거구나.' 그랬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안 앉는다는 데 있다. 괜스레 빈둥거리며 이것저것 청소를 한다, 책상 정리를 한다, 책을 읽는다, 빨래를 한다 하면서 정작 쓰려고 앉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글을 쓰려고 하면 이상하게 청소할 게 더 잘 보이고, 이상하게 책이 더 잘 읽힌다. 그런 것들로 도망가는 것이다. 글을 잘 쓰게 하는 강력한 마법의 도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을 쓰게 하는 3가지 마법 도구는 '커피'(좋아하는 음료)와 '타이머', '끈'(의자에 묶는 용도)이다.


세팅은 이렇다.

1. 커피와 초콜릿을 책상에 갖다 놓는다. (또는 녹차나 홍차, 박카스 등)

2. 휴대폰을 무음으로 하고 타이머를 맞춘다. (또는 휴대폰을 끄고 수험용 타이머 사용)

3. 책상 앞에 앉고 끈으로 의자에 나를 묶는다. (끈은 허리를 둘러 묶을 만큼의 길이)


타이머는 21분, 49분, 1시간 12분, 1시간 48분, 2시간 24분 중에서 선택한다. 시간은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느데 1시간 48분은 108분으로 백팔배를 하는 기분으로 하기 위함이고, 2시간 24분은 24시간의 십 분의 일로써, 하루의 시간 중 십일조를 드린다는 기분으로 하기 위함이다.


묶는 끈은, 재미 삼아 양끝을 뱀의 머리와 꼬리를 각각 그려놓고는 우로보로스(Ouroboros)라 생각한다. 우로보로스는 뱀이 자기 꼬리를 무는 동그란 원형의 형상으로 연금술에서 사용하는 상징이다. 연금술은 황금이 아닌 물질을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인데, 눈에 안 보이는 생각이 눈에 보이는 글로 나오면 이것이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일 것이다. 글쓰기는 연금술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Frutex &c.; Anguis gracilis cæruleo-viridis, The blueish-green Snake. (1754).jpg Frutex &c.; Anguis gracilis cæruleo-viridis, The blueish-green Snack(1754) Mark Catesby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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