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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Apr 01. 2019

그림자의 자각

이야기와 타로 활용 자서전 쓰기 22화. 15번 악마


(악은) 궁극적으로 우세하게 남아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자멸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다. (Isha Lerner and Mark Lerner <Inner Child Cards, A Fairy-Tale Tarot>)



우리가 영웅을 숭배하는 것은 순전히 그림자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가 지닌 최고의 특질을 자기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그것을 보려는 것이다. ……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면 못지 않게 자신의 고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중에서)



[글쓰기 미션] 다음에 제시된 단어를 보고 이와 관련한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가짜
두려움
무절제
그림자
비인간적
반사회적
노예상태
불신 혹은 맹신
너무 매력적인
나쁜 것(힘·사랑·습관·생각·말·행동 등)



그림자의 자각을 강조하듯 웬디가 피터팬의 그림자를 꿰매 주고 있다. (제임스 매튜 베리 글 메이블 루시 에트웰 그림 <피터팬> 시공주니어 p49)



이제 우리의 여정은 메이저 15번 악마 The Devil 카드에 이르렀습니다. 바보(0번)는 최근 왕의 죽음을 지나고 절제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이제 진짜 '죽음'과 '절제'를 실천하는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참되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 내면을 청소할 때입니다. 용감하게 눈물로 씻어낼 때입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혹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또한 어떠한 이유가 있든 없든,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그것, 바로 그것에 빛을 드리울 때입니다. 악마는 본의 아니게 우리가 객관적이면서 사실적인 태도로 그 삶의 한 페이지에 의식의 빛을 드리우게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인처럼 무시무시하던 그림자를 강아지처럼 작고 정직하게 만들게 합니다.


그림자는 자아의 전혀 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속성을 나타낸다. 이 속성은 개인에게 고유한 것으로서 경우에 따라 쉽게 의식화하기도 한다.……한 개인이 자기의 그림자를 대면하려고 할 경우에만 그림자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그림자는, 타인에겐 발견되었을 터이지만 자기로서는 있는 줄도 모르던 성질이나 충동을 만나고는 당혹해하거나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림자는 이기심이나 나태나 허약함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공상, 음모, 책략일 수도 있다. 요컨대 '별거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질 테니까 눈치채지 못할 걸'이라면서 마음에 접어두었을 것임에 분명한 사소한 죄악이 바로 그림자의 모습이다.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의식적인 인격보다 훨씬 집단적인 감염에 허약하다. 가령, 혼자서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좋지 못한 일, 분명히 유치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보면 공연히 거기에 휘말리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휘말림으로써 집단에 합류하지 못하면 공연히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느낌 때문에 사람은 종종 자신의 의식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 충동에 몸을 맡겨 버리게 된다. (칼 융 외 <인간과 상징>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개성화의 과정' 열린책들 p160~176)



인용한 바와 같이 '그림자의 자각'은 의외로 쉽다고 하지만 또한 아주 어렵습니다. 천사인지 악마인지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타로 카드에서 한 카드는 앞의 숫자 카드를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15번 악마 카드는 앞의 14번 절제 카드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폰 프란츠는 (위의 책 <인간과 상징>에서) 그림자를 만났을 때 그것의 극복과 수용에 대한 어려움을 코란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설명합니다. 모세가 천사를 만나 겪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디르'는 '제1천사'이며 '초록 사람'으로서, '신의 은밀한 창조적 행위가 인격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모세는 사막에서 하디르를 만났다. 둘이 걸어갈 때 하디르가 말했다. "두려운 게 있소이다. 내가 앞으로 뭔가를 할게요. 그런데 그것은 그대가 보기에 참을 수 없는 일이오. 하지만 그대는 어떤 경우에도 참고 믿어야 하오. 믿지 못하면 나는 그대를 떠날 수밖에 없소." 과연 하디르는 모세가 참을 수 없는 일들을 한다. 가난한 어부의 배에 구멍을 내어 가라앉혀버리는가 하면, 잘 생긴 젊은이를 죽여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믿음 없는 자들이 사는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기까지 한다. 모세는 부도덕한 이러한 행위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하디르를 떠나기로 한다. 모세가 떠나기 직전 하디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제 말해주리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가난한 어부의 배를 구멍 내어 가라앉힌 것은 해적들이 이 어부를 살해할 것이기에 죽음의 위험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잘 생긴 젊은이를 죽인 것은 그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젊은이의 범죄는 다른 젊은이와 그의 부모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믿음 없는 자들이 사는 성을 다시 세운 것은 그 땅 아래 묻힌 재물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재물들이 신실한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와 반대 경우도 꽤 있지요. 천사처럼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에 악마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악마로 판명되는 경우를 보면 처음에 다가올 때는 아주 매력적인 천사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악마'라고 하는 것들은 그렇게 포장을 잘합니다. 진실을 속이기 위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위장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의 어떤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의식화'가 되기 시작하면 악마와도 같은 그림자가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타자에게서 발견되는 악이 곧 나에게도 내재한다는 사실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됩니다. 아주 두렵고 슬픈 사실이지만 수용하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이렇게 인식하게 하는 것, 그림자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 악마 카드가 주는 효용성이며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의 용기와 절제의 미덕을 배워 자기 신뢰에 대한 믿음을 내면화했기 때문에 악마의 상징성과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5백여년전 만들어진 마그누스의 괴물지도.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먼 바다에 악마 고래나 귀신 고래를 비롯한 괴물들이 산다고 믿었다. (과학아이 <고래는 왜 바다로 갔을까>의 한 장


생각하기를 꺼리거나 회피하는 내면의 어둠 속에는 악마 같고 괴물 같은 것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정말 사는지 안 사는지는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우리가 기꺼이 인식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더 커지겠지요. 거인처럼 고래처럼 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 '복수심', '과도한 욕망', '거친 성충동' 등과 같은 악의 요소를 외면한 채 외부에 있는 무엇에 투사한다면, 자연 그 자체인 '모비딕(흰 고래)'이 악마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악마적인 것으로 뒤집어 씌워진 고래는 사실 들여다보면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래는 동료애와 연대감이 강한 표유 동물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의 은유입니다.


인간들이여! 고래를 찬미하고, 그들을 본받으라! 그대들도 얼음 속에서 따뜻한 체온을 유지해라. 그대들도 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 말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라. 적도에서는 시원하게 지내고, 극지에서도 피가 계속 흐르게 하라. 오오, 인간들이여!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돔처럼, 그리고 고래처럼, 어떤 계절에도 그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라. (허먼 멜빌 <모비딕> 작가정신 p383)



마더피스 타로에서는 계급 구조의 형태로 악마를 보여줍니다. 피라미드나 지구라트 같은 건축물 맨 위에 왕이 있습니다. 층층으로 쌓은 계단 형태의 질서 위에 사람들이 있고,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있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는 사슬로 묶여 있는데 이들은 폭력적인 방법과 보상의 형태로 계급 구조를 유지합니다. 이것이 '악마에 대한 최악의 이미지'라고 말합니다. 질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전체를 유지하려는 힘의 논리도 악마입니다.


천사와 악마, 진짜와 가짜, 믿음과 불신이라는 이중성 때문에 악마 카드에는 동물과 인간의 이중적 존재, 박쥐나 염소의 이미지, 자연을 집어삼키는 괴물 등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악'이라는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괴물이며 염소나 여우, 늑대나 박쥐 등입니다. 이들은 햇빛과 그림자, 달의 앞모습과 뒷모습, 천사와 악마처럼 그것 자체가 전부 같지만 실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며 전체적으로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THE MAGICIAN OF DRAWING M.C.Escher> 도록 p130 Circle limit IV 'Heaven and Hell'



그런데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악'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리스 신화 타로 카드의 15번 악마에는 자연의 신이며 남근 신인 '판'이 등장합니다. 판 Pan은 헤르메스와 요정 드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염소 다리와 뿔 달린 머리로 태어난 그 모습에 어머니는 그를 외면합니다. 어머니는 떠나고 결국 헤르메스 혼자 판을 키웁니다. 그런데 거칠고 노골적이며 음탕하기까지 한 판을 신들은 싫어하지 않았고, 특히 디오니소스 신은 판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스 어로 Pan은 '모든 것''이라는 뜻을 가지며 ''물리적인 우주'와 동일시' 됩니다. (인용 부분 카를 케레니 <그리스 신화>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결핍된 채 야성적으로 자란 판은 성장 후 사랑에 관하여서도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요정 쉬링크스를 좋아하여 쫓아다녔는데 순결했던 그녀는 그가 싫어서 차라리 갈대로 변하게 해달라고 해서 수많은 갈대 중 하나가 됩니다. 판은 어느 갈대가 그녀인줄 몰라 여러 개의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듭니다. 훗날 마이다스(미다스) 왕이 황금(물질)에 진저리를 치고 전원 생활을 할 때 숭배하던 신이 '판'입니다. 판의 이름이 들어간 단어는 많습니다. 패닉(panic), 파노라마(panorama), 판테온(pantheon) 등이 있으며 흉측한 갈고리 손을 가진 후크 선장을 그림자처럼 지닌 '피터 팬'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판 신은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지녔는데도 이상하게도 '결핍'의 냄새가 납니다. 이 결핍이 그를 거칠고 야성적이고 성충동을 가속화시켰던 게 아닐까요.


오이겐 드레버만은 악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근본적으로 불공평함이라는 감정' 또는 '근본적으로 거부당했다는 데'에서 왔다고 하며, 악은 그저 '의식의 문 앞에서 들여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분열된 선일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열된 선'에 불과했던 것이 어떻게 끔찍한 악마가 될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악은 계속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배제시키는'데,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외면된 그것은 나중에 ‘원치 않는 것’, ‘저주받은 것’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하는 악의 무의식적 자동화 프로그램은 단지 '처음부터 잊혀진 것들'이며 '헤아리지 않' '고려하지 않았던 힘'이며, 그래서 이 힘은 미지의 세계에서 온 것처럼 여겨져서 공포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인용 부분 오이겐 드레버만의 <어른을 위한 동화 심리 읽기> 교양인 p235)


소년들은 마구 덤벼들었다. 이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무시무시한 습격에 암퇘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명을 지르고 뛰어오르고 했다. 온통 땀과 소음과 피와 공포의 난장판이었다. …… 겁에 질린 암퇘지의 비명은 귀가 따가운 절규로 변하였다. 이어 잭은 목을 땄다. 뜨거운 피가 두 손에 함빡 튀어올랐다. …… 파리떼는 새까마니 다채로운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 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끗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사이먼은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았다. 흰 이빨과 몽롱한 눈과 피가 보였다. - 그리고 태고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이 그의 응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윌리엄 골딩 <파리 대왕> 민음사 p202, 206)



'악'은 때로 공격적인 암퇘지처럼 보이거나 무시무시한 '파리대왕' 처럼 보이겠지만 실상 그것들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에게 위험한 악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입니다. 인간 진화의 전체 프로그램 아래에 있는 '악'은 일종의 오류이며 어리석음을 내포합니다. 또한 오류는 또 다른 오류로 연결되면서 자멸로 향해 갑니다. 라퐁텐 우화의 '염소와 여우'이야기에서는 어리석음과 영리함에 대해 말합니다. 삶에서 악은 거울처럼 반영됩니다. 삶과 악이라는 영어 단어가 거울처럼 반영되듯이 말입니다. LIVED를 거꾸로 쓰면 DEVIL, LIVE를 거꾸로 쓰면 EVIL이 됩니다. 악마 카드는 우리에게 진실과 자기 성찰이라는 거울로써 삶의 면모와 구조, 패턴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당부합니다.



염소와 여우가 함께 길을 가는데 목이 몹시 말랐다. 마침 우물이 보여 가까이 가 보니 두레박이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먹고 보자." 둘은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실컷 마신 뒤 올려다보니 나갈 길이 막막했다. 여우가 말했다. "내가 네 몸을 밟고 올라갈게. 그다음에 내가 널 꺼내 주는 거야." 염소는 앞발을 들어 우물 벽에 대고 여우가 등과 어깨와 뿔을 밟고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염소가 말했다. "이제 나를 올려줘."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우물에 뛰어들기 전에 지혜롭게 생각을 좀 했어야지. 잘 있어, 나는 간다."




장 드 라 퐁텐 <라퐁텐우화집> 크레용하우스 '염소와 여우'의 한 장면



[글쓰기 미션] 우선 글을 쓸 때 당신이 있는 곳 주위로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천사의 에너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상상을 하세요.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다음 질문에 답하세요.

1. 당신이 생각하는 '악'은 어떤 것입니까?

2. 당신에게 있던 나쁜 무엇(습관이나 사람 등)은 그것과 관련 있는 동안 어떤 이익이 있었나요?

3. 나쁜 무엇과 어떻게 헤어졌나요? 혹은 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적으로 죄는 성적이고 몸적으로 부도덕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존재를 본래의 그 모습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대로 부리지 않고, 그대로 대하지 않고, 마치 다른 어떤 존재인 양 대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에 반하는 죄이며, 의식적인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로버트 존슨 <We> 동연 p290)


당신이 악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이유는 당신이 악을 은밀히 사랑하면서 그 사랑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악을 받아들여야 한다. 악이란 것이 존재하며, 그것도 생명에 그 나름의 몫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악에게서 우리를 압도할 힘을 빼앗을 수 있다. (칼 융 <레드북>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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