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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이문숙 Oct 22. 2023

미친 또라이들의 세계

-그네의자에 앉으면

10월이다. 가을에 여름 비가 미친 듯 온다. 스콜처럼 퍼붓다 사라진다. 창 밖 회화나무가 따북따북 흔들린다. 뽑힐 것 같다.


미친 여자 햄릿 같다. 아니, 미친 오필리아. 나혜석. 원화 엄마. 아기인형을 업고 다니는 미친 또라이 원화 엄마 박복석. 횡단보도에서 느닷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그여자 여자들.


또라이 박복석 딸 주제에! (원화) 그 애는 물론이고 모든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요.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10시다. 빗물 마르지 않은 축축한 그네의자에 앉아 갑자기 이런 문장을 쓴다. ‘기후가 낙후되다’, ‘사람이 낙후되다’, 이런 문장이 가능할까. 낙후된 그여자 여자들.


월요일이었어요. 저는 종로 횡단보도 한복판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습니다. 코와 입을 목도리로 싸매고 눈만 내놓은 여자가. 그 여자가 제 뒤통수를 연달아 두 번 후려쳤던 겁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낙후된 월요일. 일주일. 낙후되는 세계. 낙후된 감정. 맨홀. 소극장. 낙후된 계절. 낙후된 공실. 공원. 분수. 낙후된 광기. 낙후된 수치감. 악의. 그여자. 그여자들.


저는 본격적으로 원화를 미워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을 필요도 없이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애에게 제 물건을 빌려주어야 하는 상황이 싫었습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요즘 나는 그네의자에 앉으면 낙후된다. 땅에 발을 강력히 예속하다 반복적으로 굴러야만 상향上向하여 움직이고 솟구치는 이 적응 불가능의 문물. 이 문물의 현기. 이 현재화된 도구가 야기하는 메니에르증. 빙빙 돌기.


공원에서 분수를 가운데 두고 여덟 개의 그네의자가 배치된다. 그네도 아니고 의자도 아니다.


그 애가 빌려 갔던 멜로디언의 마우스피스에서 나는 시큼한 침 냄새가 싫었습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그네의자는 그네이며 동시에 의자다. 오리너구리처럼 그네오리이며 의자너구리. 바나나피시처럼 바나나그네이며 피시의자. 바나나피시처럼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 멸종 위기 바나나를 실컷 먹고 싶다.


뒤통수에 대고 이 병신, 또라이야, 하고 외칠까봐 두렵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물론 그전에는 이 자리에 아담한 목조 벤치들이 있었다. 심지어 예술고 공공미술 동아리 ‘아띠’와 ‘담쟁이’가 작업한 벤치 그림이 있었다.


거대한 눈동자 속에 배치된 마천루의 개미구멍 불빛. 해괴한 꽃들의 혼종. 거대한 쥐가 갉아대는 비상계단.


나는 이 낙후된 벤치에 그려진 위트와 유머 넘치는 그림들을 등에 지고 10월 10시 이 공원에 앉아있곤 했다.


그 벤치감옥으로 그여자 여자들이 온다. 그여자는 믿음교회 3층에서 나온다. 강아지들이 짓밟아 놓은 국화꽃을 챙겨 나에게 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오늘 며칠이예요. 공원의 만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묻는다.


10월 10일이예요.  그러면 여자는 어김없이 말한다. 날짜가 미친 거 아녜요.


그 여자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미친 날짜가 빗물웅덩이로 함몰되어 괴있다. 그곳에서 바나나피시가 헤엄치기도 한다. 바나나피시. 비현실의 물고기.


킥보드를 타던 아이가 그여자에게 손가락질한다. 미친 또라이, 매일 똑같은 말만 해. 날짜가 미친 거, 날짜가. 미친 거. 친 거.


저는 제 말 속에 들어 있던 즉흥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던 그 견고한 악의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우연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원화) 그 애에게 상처를 주고자 했던 저의 깊고 단단했던 진심을요.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마치 파놉티콘panopticon의 감시대처럼 중앙 분수가 여덟 개의 벤치감옥을 바라보며 물보라를 서치라이트처럼 내뿜기도 했다.  


나는 그여자의 그 말이 좋다. 날짜가 미친 거 아녜요. 날짜는 이 그네의자에 앉으면 미친 것처럼 달아난다. 미친 듯이 달아나는 ‘일주일의 세계’, 중첩된 역광 거울의 방.


그러나 그 목조 벤치는 10월 10시 햇빛 집중난방. 바람공기정화기 안온한 존재의 감옥.


급식으로 빵과 우유가 나올 때 그애가 두 가지를 같이 먹지 않고 빵을 다 먹은 다음 우유를 마시는 것이 싫었고, 공책에 필기할 때 뒷장까지 연필 자국이 남도록 꾹꾹 눌러쓰는 것도 싫었습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10월 10시. 그 시간에 파놉티콘은 시간의 죄수들이 감시대의 권력자 같은 분수가 순간순간 전복되며 부서지는 시놉티콘synopticon으로 변이되었다.


10월 10시. 아아, 살 것 같아. 아아, 미칠 것처럼 좋아.아아아


그여자가 ‘날짜가 미친 것 같아’ 하면 한 여자가 카트를 끌고온다. 그녀는 딩동댕유치원의 뽀미언니 풍으로 레이스옷에 모자에 심지어 장화에 우산에 색색실로 꽃을 달았다.


가끔 그여지가 벤치에 앉아 바느질하는 전 ‘몽상’의 과정을 지켜본 적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한다. 저 여자는 삐뚤어진 사랑으로 미친 또라이.


등에 심지어 아기인형을 업고 있다. 요즘 안 보이니 누가 데려갔나 걱정이다. 뽀미언니, 이 공원의 일부가 된 언니. 어디 가지 마요.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라고.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뽀미 언니가 팅커벨처럼 지나가면, 그여자가 온다. 빨간색을 비상약처럼 사랑하는 여자. 빨간 바지나 웃옷, 머플러. 멀리서 보면 소화전을 보는 것 같다.


집이 전소했다는 그여자는 그렇게 정신의 화상을 입었다. 그렇게 솟구치는 불의 악몽을 연인으로 삼았다. 땀을 뻘뻘대며 원형분수감옥을 중심으로 빙빙 미친듯 돈다.


오랫동안 저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알고 보니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사랑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연민이었고 그 후에는 그저 관성이었음을 알아버린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나 또한 그여자들의 눈으로 보면 미친 또라이의 세계에 소속된 바나나피시. 아직도 낑낑대며 정신의 파놉티콘인 책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 그여자들처럼 그네의자가 마땅치 않은 옛날벤치 애호가.


나도 다를 바 없어. 나는 이렇게 그여자들을 연민한다. 연민을 탁송하는 10월 10시의 바나나피시. 나른하고 애처로우며 악의적이다.


*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어머니:로트렉의 발치한 어금니를 목걸이 장식으로 썼다.

*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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