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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선사’라는 말이 온 아침

by 시인 이문숙

아, ‘선사'라는

말 있네


봄 나무 아래

가을 잎

다른 계절과 속셈


그래도 서로 기대고

붙잡아 주고

다독거려 줄까


그녀가 처음 만들어

선사한 비누


선물이라기보다

선사라는 말이 먼저 온


서툰 기포 위

무슨 잎일까


새순 하나 들어 있는

말갛고 투명한

무색 무향의 비누


이런 아침에는

호수에 가

얼음 몇 개 쪼개올까


얼음 책상을 짜고

얼음 의자 지어볼까


새순 뭉개질까

요리조리 돌려 씻는 비누

봄 낙엽 가을 새순


얼었던 호수가

뚝뚝 녹아 흐르면


비누 속에 새순

봄 나무에게 갈까


‘선사’라는 말이 먼저 온

아침


의자 발에 묻은 먼지를 살살

털고

머리카락을 줍고


뽀글뽀글 죽을 끓여

그동안 마구 써서

망가진 이에게 선사를 해야지


진단 결과: 오른쪽 아래 깨진 어금니

왼쪽 위 부러진 송곳니


암사자 머리통 부수거나

악어 가죽 꿰뚫거나


점점

호수 물 새파랗게

악화되어가는


미안해 하지 마

선물이 아니고

선사야


전혀 부담

안 가져도 돼


무색 무향

비누가 온 날


비누 포장지에 싸온

파절된 이처럼


그래, 좋아

살살 쓸게


낙엽의 누락이니

새순의 권고니


누가 금붕어

살얼음 속에 버렸을까


마취를 하고

지혈제를 맞고


남은 시간에는

가능한 한 새순을

권장할게


기포 뻐끔대는

더 이상 호수의

누락이 없게


고마워

어떻게 그런 걸

다 만들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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