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바타유의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마네'
'아랑곳'은 어딜까. 어떤 장소일까.
참, 아랑곳 없네. 그가 말했을 때, 다른 말은 다 남지 않았다. '스르릇릇' 목도리방울뱀처럼 다른 앞뒤 말은 스러지고 사라졌다.
'아랑곳 없네.' 그 말이 설핏 귓가를 '치익' 그을 때, '아랑곳'이라는 말이 파르락거리며 뾰족한 '불꽃' 하나로 일어섰니. 깜짝 놀란 너는 그 말을 두 손을 오그려, 받았고 혹시 어디선가 오는 바람에 그 말이 꺼질까, 다른 말을 싹 다 지우고 잠깐 방울뱀처럼 울었니. 절뚝거리며 걷던 다리에 끝내, 괴사가 일어난 그가 마침내 다리를 절단하고 생의 마지막 그림을 그리듯, '마침내'라는 냇물이 '스릇릇' 흘러갔니.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마네'에서 에두아르 마네를 그가 살던 뻔한 세기에 '딴죽' 건 사람이라고 했었나. 딴죽을 잔뜩 걸어놓고도, 노골적으로 세상을 조롱했던 보들레르와는 달리, 마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마음에 걸려 우유부단, 흐지부지 자신의 그림을 변명했었다고 했었나. 마네가 우물쭈물 머물렀던 '아랑곳.'
그러면서도 '최악의 졸작 '올랭피아'를 '절대 걸지 않으리만치 높은 곳'에 야금야금 걸어 내놓아, 세상의 승복을 결국 받아내었나. 사람들의 '수근거림'에도 '아랑곳'하며, '아랑곳' 없이, 예술의 자리를 신들의 궁전에서 '일상의 꺼끌거리는 바닥'으로 내려놓고 바라보게 했나.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면서, '아랑곳'하면서, '아랑곳' 없이 연거푸, 모르는 척 '풀밭 위의 식사'를, '폴리베르제르 바'를, 하나하나 결투하듯 세상에 내놓았나.
그때 '아랑곳 없음'에 아랑곳은 어딜까. 흔들리고 보채고 흐늑지고 뭉개지고 흐드러지고 비웃고 깔깔대고 뒤채다가, 결국은 하얗게 실신했던 몸을, 육체의 가장 나약하고 최종적인 부위인, 도무지 얇다란 '무릎'으로 일으켜 서서 다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곳.
11월 찬물, '아랑곳'에서는 별 보는 잉어가 물에 누워 조락하는 오색빛 이파리를 가만 바라보아요. 11월 정류장 '아랑곳'에서는 일 나간 그를 기다리는 여자가 재차 확인하는, 11월 전광판 어릿어릿한 '아랑곳'이 있어요. 거기에서는 '나, 버스 탔어'라는 말과 동시에 '도착 시간 1시간 14분 전'이라는, 아득한 기다림의 노선이 흐르고 흘러요. 그녀의 까마득하고 조심성어린 '아랑곳.'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눈자위의 '아랑곳'이 갈가마귀처럼 어두워져요.
어떤 잎이 '검붉은 하늘의 손바닥'처럼 툭툭 지는 '아랑곳.' 그녀는 쪼그리고 길가에 앉아, 육신의 '귀'가 아닌, 둥그래진 '무릎의 눈'으로, 늙은 '나뭇잎 악사'가 들려주는 야윈 갈비뼈의 연주를 들어요.
버스에서 내린 빨간 입술 흰 얼굴의 소녀가, 짧은 치마 맨다리에 '분홍 무릎 담요'를 두르고 황급히 사라지는 '아랑곳.'
'폴리베르제르의 바'는 마네의 마지막 아랑곳. '폴리folie'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나뭇잎 요정'으로 변장한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대가의 저택, 한귀퉁이에서 사는 '오두막'을 말하기도 해요. 그는 저녁이면 '정령'의 옷을 벗고 퇴근하겠지요.
'베르제르bergere'는 '안락의자'라는 뜻이래요. 하루종일 가짜 '숲의 정령'으로 분장했던 남자는 11월의 '아랑곳'이 쓸쓸쓸해, 거울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한 그 '아랑곳'의 바에 들러요.
그곳의 여종업원과 '오늘 하루도 고되었어.'라고 하소연도 하겠지요. '아랑곳'의 담뱃불이 낸 구멍 뚫린 '안락의자'에서 푹 쉬고도 싶어요. 아름다운 거울의 매혹에 빠지고도요.
마네의 '아랑곳 없음'처럼 여종업원은 '진정한 무기력' 속에 멍하구 나른해요. 보들레르처럼 '울부짖지도 않고, 자아를 부풀리고 싶어하지도 않고, '비개성적인 고통'만이 가득한 거울의 '아랑곳'을 보여 줘요.
마네의 마지막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바'를 보며, 그의 유일하게 얌전한 '아랑곳'을 보여주는 그림 속의 '아스파라가스' 한 가지를 그녀는 '아랑곳'의 안주로 내어 놓아요.
진열장 유리 글라스에 꽂힌, 시득하니 마악 잎이 오그라지는 흰 장미의 '아랑곳'과 함께.
파르스름한, 섬세한 손가락의 떨림을 '아랑곳'에 간직한 마네의 정물화 속 '아스파라가스' 한 가지와 함께.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조르주 바타유 저 | workroom(워크룸프레스) |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