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의 '테스트씨'
잔설이 얼어붙은 길, 잔뜩 웅크린 채 걷는다. 내 앞으로 순록 한 마리 지나간다. 발은 그 뿔의 미로에 걸려 나동그라진다.
테스트씨는 그런 나를 목격했다. 내 팔을 낚아채고, 그가 혼자 자주 가는 예스런 '빛의 연못'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의 서재는 20년 동안 비워졌다. 모든 종이를 불태웠다.
20년 간, 누워있던 침대는 삐꺽거렸다. 그는 '널빤지' 항해를 한다. 널빤지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 나간다. 해변에 빼곡한 묘지를 본다. 묘지의 묘비명과 생몰연대와 이름을 본다.
폴 발레리는 어느날 모든 책을 처분한다. 20년 동안 침묵한다. 텅빈 서재에서 오직 테스트씨와 동거한다.
이십 년, 이십 년. 그 세월 동안 테스트씨는 머리 속에서 빙빙 도는 서너 마리 금붕어들이 '멍청한 이름의 광기'로, '하찮은 생각들의 장식'으로 흰 배를 뒤집고, 마침내 '물의 침대'에 눕는 걸 목격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의 와상.
나는 테스트씨의 손을 잡고, 생각의 검은 내장 같은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20년 동안 걸어, 그가 사랑하는 돌테두리가 소매처럼 헐은 연못에 간다.
테스트씨와 나는 나란히 쪼그리고 앉는다. 같은 트랙을 끊임없이 돌고 있는 금붕어들을 본다. 피부병처럼 빛은 수면 위에 번진다.
20년의 트랙이 수면에 오래된 길처럼 패인다. 거칠게 순환하던 바퀴는 그 홈에 끼여 꿈적하지 않는다.
테스트씨는 그 위에 널빤지 배를 띄운다. 거칠고 나른한 해풍은 '위대한 사람은 과오로 얼룩졌다.'고 소리친다. 위대한 책들이 재가 되어 연못으로 떨어진다.
테스트씨는 연못 앞 식물표본 팻말을 들여다 본다. 'Sisymbrifolium'. 괴상한 이름이다. 이 '꾸밈씨들의 정원'. 바보 폴리들folly의 정원.
이런 종류의 팻말을 읽으며 하루의 산책은 끝난다. 그 팻말 속의 난해한 학명들을 읽으며, 그토록 집착하고 사로잡혔던 '나'는 삭제된다. 그는 일체를 목격하는 제대로 된 테스트씨가 된다. 가장 '불가능하고 새로운 두뇌tete.
테스트는 목격자testie, 과잉된 '나' 속에 연약함과 결핍과 그 결핍의 처녀들을 보는 자.
20년 동안, '나와 나 사이에 있던' 나를 하얀 밤 속에 목격한 폴 발레리는 20년의 침묵 끝에 '해변의 묘지'를 이 세상의 꾸밈씨들의 정원에 내놓는다
20년, 20년, 20년. 미성년이 성년이 되는 성년의 밤. 그 성년의 밤을 나는 어느덧, 세 번이나 지나간다.
테스트씨, 저에게도 널빤지 하나 주세요.
순록대학에 가면, 순록의 학명과 짝짓기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한다. 어느 백야의 항구에선 겨울철 별미인 대구의 혀를 자르는 칼을 네 살의 아이에게 선물한다
대구의 긴 턱을 날카로운 송곳에 우선 꽂는다. 그러면 혀가 늘어진다. 순간 칼로 혀를 벤다.
20년이 지나, 성년이 된 아이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어부가 된다.
20년, 그래 20년.
*테스트 씨
폴 발레리 저 / 최성웅 역 | 읻다 |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