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베 기베르Herve Guibert의 유령 이미지L'image fan
그/소설가는 앉아 있다. 누각의 서쪽으로 열 서너 걸음. 콜타르 칠 냄새가 가시지 않는 벤치에 그는.
그가 앉은 자리에선, 그가 소설에 썼던 노래 '주쌩뚜디피니'가 들려. 지치지 않고 반복재생되는.
그가 일어서 가면 내가 거기 앉아. 저건 은사시나무인가 서어나무인가 백양나무인가. 잎이 눈부셔 구별할 수 없어.
우듬지에는 찢긴 나뭇가지에, 서서히 수액이 닿지 않아 말라가는 가지에, 손바닥만한 잎 하나가 팔락대.
공기가 희박한 달 표면에 최초로 꽂은 깃발이 없는 바람에도 흔들리듯.
손바닥만한 잎은 이렇게 중얼중얼해. 난 새파랗게 몰라. 난 '주쌩뚜디피니'를 이해 못해. '주쌩뚜디피니,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난 알아.' 난 몰라. 그 말을 난 새파랗게 이해하지 못해.
잎은 식당 쇼윈도의 플라스틱 음식 모형처럼 오래도록 파래. 시들지도 끝났음을 알지도 멈출 줄도 몰라.
찰칵, 누가 찍은 걸까. 초록빛 인조 벨벳 점퍼를 입고 열 여섯의 칠뜨기 소녀인 나는 터널의 밤을 지나가. 수학여행의 밤이야. 철컥철컥 이 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에르베 기베르Herve Guibert의 유령 이미지L'image fantome'에서처럼 시간은 '뚝' 멈추고, 사건이 없는 독립된 한 순간이 길고 이유를 모르는 '잔존'이라는 걸 해. 그날의 기차 차창은 이미지 하나를 수화물로 싣고 달려. 다른 시간의 모든 '잡동사니'로부터 순간 하나를 자폐아처럼 떼어놔.
그로부터 대여섯 해를 돌아가면, 그때의 소녀는 겁없이 초연하게 멀뚱한 아이가 되어, 외조부의 49재를 마친, 보광사 절마당에 서 있어. 찰칵, 멈춘 순간에 말라깽이 다리에선 주르륵 스타킹이 비비 꼬이고 겉돌며 흘러내려. 물이 편도선염으로 솟는 개울은 어떻게 건넜나.
마구 늘어나는 생사의 주름처럼, 놋쇠대야에서 혼백을 입은 흰 종이 옷이 그림자를 늘여, 찰칵. '하얀 탈색'의 순간이 남아.
그 아이는 다시 수십년을 전진해 엄마가 되어, 영원히 젊은 엄마의 사진을 봐. 뻐드렁니 입의 아래로 처진 눈의 눈 옆의 작은 사마귀의 들린 코의. '주쌩뚜디피니', 나는 그걸 몰라. '모든게 끝났다는 걸' 몰라. 정말 모르고 몰라.
'양순이한테 삼백만원 받을 게 남았어.' 인공호흡기를 낀 엄마가 내 손바닥에 써준 그 말이 유언이 될 줄은, 스타킹이 그걸 먼저 알고, 그때 벌써 주르르 흘러내렸던 것일까.
엄마가 아끼던 여름 옷은, 약간의 왜색풍, 은방울꽃 문양의 구멍이 숭숭 뚫린 옷, 그렇게 뚫려, 이 '주쌩뚜디피니' 터널의 밤을 지나가.
남은 밥풀로 풀먹인 옷에 입에 물고 있던 물이 뿌려지고, 착착 개여진 옷은 발 아래 조근조근 밟히며, 주름의 조리개로 펴져.
대신 주름은 엄마의 뺨에 눈가에 이마에 들어가 새의 지느러미처럼 파닥거려.
여기가 어딜까. 찰칵, 엄마는 그 말끔하고 옥설 같은 옷을 입고, 한계령인지 어흘리인지 화비령인지, 알 수 없는 산마루에 영원히 서 있어.
'하얗게 텅빈 순간', '주쌩뚜디피니'를 모르는 울새 하나가 사진 밖에서 울고.
배경이었던 산은 차츰차츰 낮아지고, 나는 끝을 모르는 연쇄방화범이 되어, 온갖 사진을 태워. 여진처럼 '대화재의 주름'은 얼굴에 남아, 찰칵, 미간을 찡그리고.
'주쌩뚜디피니'를 나는 모르고, 그날의 찢긴 가지에 매달려 있던 철없는 잎처럼 '하얗게 감광되지 않은' 필름의 순간을, 다시 찰칵, 소환하고 언도해. 붙박고 고정해.
늘 누각으로부터 몇 걸음, 벤치에 앉아있던 그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이런 순간 속에 '잔존'하고 싶어.
소설 속의 늙은 엄마가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젊어 보이려고 입은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찰칵.
끝끝내 화재가 난 '빨간 미니스커트.' 진화되지 않는 빨간.
*유령 이미지
에르베 기베르 저 / 안보옥 역 | 알마 | 2017년
* 김연수의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을 읽고, 어떤 ‘하얀 감광’의 순간을 쓰다. 이후, 정발산 ‘평심루’ 근처 벤치에서, 실제로 소설가를 신기루처럼 만나는 기이체험도 했다. 암말 걸지 않고 살짝 스쳐가긴 했지만.
#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