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육아일기#1
-사춘기 아이의 눈빛과 말투가 날카롭다. 선천성 신장병으로 아파하는 아이를 품고 기르며 함께 한 기억이 빈틈없이 가득하다. 곧고 바른 아이의 성장통이 사춘기라는 것을 알지만 간혹 가슴이 조각나 얇게 베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아이는 부정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무언가 사달라고 하거나 엄마라는 존재가 물리적으로 필요하지 않을 때는 나를 친근히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럴 때면 아이의 뱃속부터 적어오던 육아일기를 꺼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읽는다.
#1 아이의 존재를 처음 안 날.
엄마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을 지닌 나의 아가에게.
오늘 처음 너의 존재를 알았단다.
미안하다. 아가야.
난 오늘도, 어제도 존재의 깊이와 씨름하며
사람은 아픈 것이기에 고결하고, 그런 고결한 아픔이 날 더 고독하게 만들며
그렇게 자라난 고독이 육신에 들어찬 영혼의 질료가 되어줄 것이라며 울고 있었단다.
그런 와중에도,
넌 나의 부분 부분을
조금씩
너의 피와 살로 만들어가며
나보다 더 큰 전쟁을 하고 있었겠구나.
아직, 너는 내 안에 존재하는 작은 동그라미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허락 하마.
약하기만 했던 엄마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정신적 강함과 그나마 쓸모 있고 좋은 영양분들은 다 네가 갖도록 해라.
나의 작은 동그라미야.
내 것을 가져, 네 것을 만드려무나.
그렇게 내 것을 빌어 네가 더 많은 동그라미가 되고, 그 동그라미가 훗날 펜을 들을 너의 손으로 변하고, 세상을 굴릴 발로 변하고,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 줄 너의 첫마디가 튀어나올 입술로 변하고...
그렇게 무수히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할 너이기에, 나의 모든 것을 가져라.
엄마의 아픈 기억과의 싸움으로 생긴 빈틈없이 들어 찬 과거의 파편은 깊이 몸을 숙여 피하도록 해라.
내 안에 있는 동안, 부디 내 몸뚱이 구석구석 좋은 부분만을 가져다가 너의 작은 것들을 만들어 다오.
엄마가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네가 나의 좋은 것만 가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
그때, 네게 처음,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 중,
가장 오묘하고,
신비하고,
우주 같아 모든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언어인 '사랑'이란 단어를 네게 들려주마.
2007.5.7
사랑해.
라고.
아이가 아픈 것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기 위해 수 없이 말해 온 15년.
뱃속 안에 있던 아이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사랑해'란 말의 의미를 난 얼마나 실천하고 있던 걸까.
'사랑'이란 방패 앞에 내 아이의 의견을 막아 세워두려고 한 건 아닌지. 아니면 아이의 뾰족한 말을 그 '사랑해'란 방패로 막아보려고 했음은 아닌지...
—중2병이란 말이 아이 개개인의 성장을 병명으로 가둬버리는 것 같아 지독히도 싫어하지만 자꾸 내 아이의 고민을 중2병이라고 진단 내리고 회피하는 나 자신이 싫어 아이와 입씨름한 밤, 육아일기 첫 페이지를 꺼내어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