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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Nov 02. 2022

세상의 모든 편견을 거부한 곳. 이태원.



도시의 어떤 지역은 고유의 색이 있다.

그 색은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고 멋들어진 수식어가 되어 고유명사처럼 쓰이곤 한다. 젊음의 거리 홍대, 패션의 메카 압구정, 힙스터의 성지 성수, 혹은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는 곳이 되어 브랜드명처럼 굳어진 강남,

그런데 앞서 예를 든 수식어를 이태원에 붙여보면, 젊음의 거리 이태원, 패션의 메카 이태원, 힙스터의 성지 이태원, 혹은 브랜드 이태원 그 어느 것 하나 어긋남 없이 찰떡같은 수식어가 되니 참 신기한 곳이다: 아마도 그만큼 이태원이 다양한 색을 지녔기 때문 같다.



내게  이태원의 기억은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미제 물건이 많다고 구경 나간 엄마를 따라서였다. 외국인이 흔치 않던 시절 너무 까맣기도, 너무 하얗기도  외국인들을 처음  나는  속에만 존재하던 위아더월드를 느꼈다. 군복 차림의 외국인들을 지나쳤을  엄마에게 주한미군이 뭔지,  우리나라에 외국인 군인들이 있는지 일제를 거쳐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도 함께 들을  있던 진귀한 경험이었다.

 후엔, 대학시절 덩치가 산만하고  사이즈가 300밀리인 친구를 따라서였다. 웬만해선 맞는 옷과 신발이 없어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는 우울함만 쌓인다던   친구는 어느 길거리에서 보다 활기차고 행복했다.


그렇게 내게 이태원은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육식주의자였을 땐 친구들과 함께 현지인이 직접 운영해 현지 맛 그대로라는 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연애할 때는 늦게까지 문 연 외국 느낌 풍기는 술집을 가기 위해,

그 후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을 보여주기 위해,

채식주의자가 된 후엔 다른 곳에선 쉽게 찾기 어려운 비건 음식점을 찾기 위해 수십 년간 이태원에 발을 들였다.



근래에 가장 강렬했던 이태원에 대한 기억은 다큐영화 ‘모어’를 보고 나서다. 영화 모어는 한예종 출신의 성소수자 모어의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하던 발레리노’였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성소수자의 편견이 가장 심한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본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는데 모어가 방황할 때 편견 속 세상, 그래도 살아내게끔 계속 춤을 출 공간을 내어준 곳이 이태원이었다.

또 하나, 비건을 하며 관심을 갖게 되어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에선 쉽게 찾기 어려운 유기견구조센터가 그 좁은 동네 이태원에는 두 군데나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사람이 덩치가 커서, 성소수자여서, 비건이어서 조금 다르든, 그 동물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든 개의치 않고 품어주는 곳, 이게 내게 각인된 이태원이다.

좋은 옷도, 비싼 가방도, 내 커리어가 누적된 명함도 필요 없이 나체만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동등한 인간이 되는 대중목욕탕 같은 곳,

누구도 부끄러울 수 없는 곳. 세상의 모든 편견을 거부하는 곳.


그곳에서 핼로윈 파티로 모인 젊은이들에게 참사가 벌어졌다.

도미노처럼 무너진 인파들이 서로 끼여 축 늘어져가는 모습을, 차가워진 바닥에 마네킹처럼 눕혀져 CPR을 받는 모습을 전 국민이 지켜보았다. 아마도 온 국민의 계속될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국가 애도기간으로 모든 행사가 중지되며 남편회사에서 준비한 행사도 무기한 연기되어 금전적 손실이 불 보듯 뻔했지만 남편도 나도 불평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평소보다 더 목소리 낮춰 애도했을 뿐이다. 아마 온 국민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이 참사에 편견이 자리를 튼다.



국적불문의 상술 파티에 현혹돼 술 먹다 놀다 죽었다는 기성세대의 편견이 이태원 이름 위에 제일 먼저 놓였다.

과거 우리는 어떠했는가. 우리가 코흘리개 시절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모르면서도 초코파이 하나 먹고 싶어 교회 문을 두드리지 않았었나.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투척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긴 시간을 거쳐 습득된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아이와 트리를 만들고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는 것처럼, 우리는 크리스마스란 문화를 습득했다. 이처럼 지금 세대들은 그들이 자연스레 접해 온 핼로윈 문화를 즐기기 위해 켈트족의 원령들을 믿든 믿지 않든 코스튬 분장을 하고 거리 위로 나선 것뿐이다.


참사 이틀 후 합동분향소가 세워지고 가로수에 각 지역당위원회는 애도를 표하는 현수막을 앞다투어 내걸었다. 그런데 과연 그 현수막이 전달하는 무게감만큼 진정 애도하는 정치인들이 얼마큼 있었을까. 이게 서로 물어뜯을 기회다 하는 것처럼 탓을 하는 발언들이 줄을 섰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따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려 왔던 정쟁의 도구를 찾아낸 듯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느낀 일부 국민들도 각자의 지지성향을 참사 뉴스 위에 마구 쏟아내고 있다. 이태원이란 이름 위에 정치적 파편이란 편견이 자리 잡는다.


한덕수 총리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위트 있는 말재주를 뽐내고 싶었던 걸까. 그보단 진중한 자세를 앞세웠어야 한다. 한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국민의 참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이 이태원이란 이름 위에 쌓였다.


우리의 과제는 핼로윈 파티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다소 과격한 결론이나, 짜인 시나리오처럼 누구 하나의 책임만을 물어 경질로 끝맺는 꼬리 자르기가 결론이 돼서는 안 된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하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문화를 발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말해 입 아픈 당연지사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둘은 없던, 세상의 모든 편견을 거부한 이태원. 그곳에 쌓이고 있는 편견을 거두어내는 일. 그래서 다시금 이태원이 이태원만의 정체성을 품고, 누구도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다시 설 수 있게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누구는 기성복에선 만들지 않는 옷과 신발을 사러, 누군가는 그리운 고국의 음식을 먹으러, 누군가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탈출구를 찾으러, 모두가 버림받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할 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싶다. 그 주체가 내가 아닌 우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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