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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Oct 13. 2023

난 ‘마르다‘


비건 6년 차, 갓 기름 친 체인처럼 소리도 없이 잘 굴러가던 비건에 대한 내 의지가 삐걱거리는 일들이 터졌다.


5년이나 잘 따라와 준 둘째의 원성이 먼저였다. 물론 아빠를 따라 주 1회씩 고기나 치킨으로 외식을 하고 들어왔지만, 플렉시테리언으로 키우는 것도 괜찮아라며 내 안의 불안함을 향해 자조를 던졌다.


몰래 돈을 훔쳐 바깥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가장 원초적인 먹을 것에 대한 불만에 엄마의 영향력이라는 자장이 작용하지 않았다.


경차 차체에 ktx엔진을 장착한다는 테스토스테론이 빵빵 터져대는 시점의 아들은 세 배는 커진 고추를 내 앞에 숨길 줄은 몰랐지만, 엄마에 대한 원성만큼은 좁쌀 한 알만큼도 숨기는 법이 없었다.


온 집안이 라면껍질과 핫바막대기, 온갖 동물성과 화학식품으로 치장된, 음식이란 겉표지만 한 채, 쓰레기라 불러도 마땅한 것들의 잔해가 뒤덮인 날. 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를 뛰어넘어 공사장 수준의 소음으로 무장되어 돌아왔다.


책 깨나 읽은 아들은 엄마 혼자 외로운 일탈을 하는 것이라고 날 훈계했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처럼 왜 맘껏 집에서 못 먹는지 이해할 생각도 없었고, 본인의 고기식사권리만 재차 주장해 댔다. 환경오염, 건강, 널 위한 사랑을 들이밀어도 아이의 바깥 식사는 한동안 지속됐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우리 관계의 균열은 엄마의 말에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틈이 되었고, 그 틈은 엄마의 모든 생각을 거부하는 싱크홀로 변질되어 갔다.


이런 식이었다. “오늘 더운데 바람막이 입고 갈까? “ 하면, 춥다며 겨울패딩을 입고 등교했다. 초록양말을 꺼내 놓으면 왼쪽은 빨간양말, 오른쪽은 초록양말을 장착하고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했다.


관계의 위기를 절실히 느낀 나는 하루는 채소반찬, 하루는 고기반찬을 내밀었지만, 아이는 휴전할 생각일랑 품지 않고 중공군을 투입했다.


학원을 안 보내고 집에서 교육시키는 우리 집 특성상, 하루 20분 영어책 읽기, 영어 단어 8개 써보기 등 몇 개의 일과들이 있었는데(과거형이다. 내가 이 전쟁에서 졌다는 걸 암시한다.) 단 한 개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만 돌았다.

내가 차려놓은 식탁 위 정갈한 반찬들은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의 내 가슴만큼 가슬하게 메말라 분쇄기 속으로 쳐 넣어지는 저녁이 이어졌다.


아이의 몸은 몇 달 사이 비만에 가까운 과체중으로 불어나 있었다. 채식으로 잠잠해졌던 아들의 천식은 비염으로 되살아나 있었고, 내 가슴은 어딘지 모를 곳이 매일 그리도 따끔거렸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에게 소리도 쳐보고, 육아 책도 다시 꺼내 들고, 깊은 대화도 시도해 보다(느낀 건데 깊은 대화가 제일 안 통했다), 서너 달 사이 난 아들의 일상은 간섭하지 않고 오늘도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하기만 기다리는 방조하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유도를 오래 배운 아들의 큰 경기 일정이 잡혔다.

이때부터 단단하다 생각하던 비건에 대한 내 의지가 파도 앞 모래알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조선 왕실에서 가장 장수했던 영조는 고기를 안 먹고 채소와 생선만 즐겨 먹었던, 지금의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다고 한다. 소, 돼지 말고 뛰노는 닭을 보고도 긍휼히 여겼다는 영조인데도 정조가 감기라도 들라치면 “저 닭을 잡으라. “ 외치며 정조의 건강을 육식으로 챙겼단다.


경기 일정이 잡히자마자 온갖 육고기들을 장바구니에 이고 들어왔다. 영조식 사랑법이었나. 모르겠다. 그냥 무의식의 내가 한 행동이다. 그러다 요리를 하려 팩을 열고, 고기 냄새에 구역질을 할 때쯤 ‘앗, 내가 비건이지..’라고 인식했었달까?

고기반찬이 가득 올려진 식탁 위로 아들은 내가 그리워하던 보조개 가득한 미소로 돌아와 있었다. 아들이 이겼다.


기름 잡내들이 나지 않는 내 식기들이 자부심이었는데, 날 추켜세울 자존감 하나를 칼로 베어낸 느낌이 들었다. 아들을 얻은 대신 믿음을 휴지로 만들었다.


아들과의 전쟁 시작 즈음,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컴컴해진 시야 때문에 순간의 실수로 손가락이 거의 잘려 수지봉합수술도 받았다.

이때부터 비건을 절대적 상수라 생각하는 나를 향해, 봉인해 놓았던 주변의 충고가 봇물처럼 터졌다.


손가락이 붙으려면 고기를 먹어야 해. 정상안압 녹내장의 경우 채식이 원인일 수 있으니 당장 고기를 먹어라. 아픈데 꼴값 떨고 있네. 비건은 정치적 행동이니 남들 시선 앞에서만 해(난 비건 빵을 팔고 있으니) 등..


다 맞는 말 같았다. 아들과의 관계도 앗아가고, 날 아프게 만든 게 채식 때문 같았다. 구역질을 참고 고기를 먹어보았다. 2시간도 되지 않아 장세척을 받은 듯 설사를 해대고, 온몸에 발진이 돋았다.

며칠 뒤, 소시지를 먹어보고, 회를 먹어보았다. 온몸의 두드러기를 긁어대느라 생긴 피딱지들을 보며 의지를 버려버린 날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약을 안 먹어도 될 때는 매일 술로, 지구환경인지, 동물인지, 건강인지 대상이 불분명한 죄책감과 자책하느라 들이부은 술로 인한 무기력감에 벗어날 수 없었다.

매일 마트에서 아들을 위해 고기반찬을 사고, 건강 핑계로 고기를 먹었던 나에게 충실하고 영양이 균형 잡힌 식사를 대접할 순 없었다. 햇반 하나 돌려, 김치에 김 놓고 비건 와인을 마시는 식이었다. 나를 향한 미친 형벌이었다.


당연히 몸이 견뎌내질 못 했다. 저혈압이 생긴 나는 매일 휘청대며 여기저기를 찢기고 다쳤다.


그런데 이상했다.

난 육류 서너 번 입에 댄 걸로 고통스러웠는데 남들은 지구온난화에, 동물에 어찌 그리 태평할까..



성경 속 ‘마리아와 마르다’가 생각났다. 예수님을 귀하게 여긴 마르다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앉아 볼 틈도 없이 일만 하는 마르다는 예수님 옆에 붙어 섬김만 실천하고 있는 마리아를 얄미워한다. (그 뒤, 예수님의 말씀들에 대한 해석은 난 기독교인이 아니니 잘 모른다.)

다만, 본인이 만든 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 예수님 옆에만 붙어있는 대신 마리아도 자신을 도와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억울함 등이 비건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과 닮아있었다.








사람들을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낯설었다. 다시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야 했다.


도둑놈 절도 끊지 못하듯, 다시 건강한 비건식을 잡고 일어서기로 했다. 육식에 대해서도 유연한 맘을 가진 비건으로, 개인선택을 지지하되, 내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는 방법으로, 우선 술을 끊었다.(잠시만 기다려줘. 술아~) 아들 반찬만 따로 만들고, 정성을 다해 내 비건 식탁도 차렸다. 날 용서하겠단 마음이었다.



날 용서하고 나니, ‘넌 왜 안 해?’라던 마르다 대신 예수님 말씀을 경청했던 마리아가 내 맘에 더 가까워진 듯했다.


지난 시간 늘 그래왔듯, 다시 조용히 실천하는 비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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