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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현 Feb 13. 2022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2 대학교 1학년 1학기


법학과를 희망하던 스무 살 대학생은 그렇게 광고학과에 입학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쾌활하고 열정적이기 그지없었다. 형형색색의 머리색과 함께 예쁜 옷과 가방을 들고 온 사이에 한 마리 미운 오리새끼가 있었다. 꾸미기는 커녕 말 한마디조차 건네기 힘들어했던 그 과거를 나는 조용히 차가운 땅 어딘가에 묻어버렸지만. 물론 광고가 아니라 점수를 이유로 대학에 진학한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열정 대신 학벌이나 취업 같은 세상 삭막한 이야기가 오갔다. 뭐하러 박봉에 야근 많이 하는 광고를 전공으로 선택하냐는 비아냥부터, 어차피 자신은 학교와 학과를 옮길 생각이니 별 생각이 없다는 다짐이 섞여 애매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속에서 조용히 수능을 준비했다.


학회나 동아리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수업을 듣고 도서관으로 향해 수능을 공부하기 바빴고, 그러다 수능 공부가 지루해 질 때 즈음이면, 전공 서적을 펴 읽었다. 그 때 처음으로 광고가 재미있다고 느꼈다면 이상한 사람일까. 솔직히 말하면 속았다. 수능 공부보다 재미 없는게 세상에 몇이나 된다고. 광고의 사전적 정의, 홍보와의 차이점, A to Z라고 하는 여러 방법론까지. 아무렴, 그 당시의 영어 지문보다는 쉽게 읽혔다.


그렇게 살기를 몇 달. 어느 날은 수능 서적보다 전공 서적을 읽는 시간이 많은 날도 있었다. 수능 한 번에 다니고 있던 학교를 담보로 걸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그만큼 나약하고, 겁 많고, 간절하지 않았던 나는 그랬다. 그저 학벌이라는 끈을 놓지 못해 집착하고 있을 뿐. 벚꽃이 흐드러질 때 즈음, 대학에도 중간고사가 다가왔고,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애매한 성실 뿐인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가 맞다.


대충 4점대의 학점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뭔가 자기자랑 같지만, 1학년 기초 수업 중에 광고를 가르치는 수업은 하나 뿐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이니, 기초 경제, 토론 수업이니 하는 것들은 법, 정치를 배우며 이미 수십 번 고민해 본 문제들이었기에, 광고 수업보다 훨씬 편했다. 시사 상식과 경제를 엮어서 글을 쓰는 과제, 현재 이슈를 가지고 하는 토론, 여러 용어와 사례로 가득찬 커뮤니케이션 수업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법조문을 읽고, 해석을 검토하고, 모의 재판을 하던 과거의 내게 고마운 순간이었다. 물론 재미는 없는 사람이지만, 기초 능력은 어디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조금은 안심했다. 사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풀지 못할 만큼 어려운 문제는 없었고, 그만큼을 요구하지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언제나 걸림돌은 광고 수업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는 오 월 즈음하여, 학과는 학술제 이야기로 가득찼다. 속칭 '콤마'라고 부르는 행사로 Communication with ADPR of Hanyang의 약자였나, 아무튼 기업에서 참여하여 상금을 주는 형식으로, 보통 3~4학년이 팀장을 맡고, 1~2학년이 팀원으로 참여하는 형식이었다. 다같이 하나의 기획서를 완성하고 팀장이 오백 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큰 규모의 행사였다. 학과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손에 꼽는 행사였던 걸로 알고 있으며, 자연스레 학과의 모든 대화 주제는 '어느 선배의 팀에 들어갈지' 로 귀결되었다.


그 와중에 혼자가 되는 건 두려워, 어쩌다 참여한 엠티에서 알게 된 선배의 팀원 모집 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기획서를 써보기는 커녕, 기획서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무슨 용기였나 싶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본인을 포함하여 일학년 여섯 명, 이학년 한 명, 삼학년 세 명의 팀이 만들어졌다. 일학년이 여섯 명이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청일점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선배들과 팀원이었던 동기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나마 나를 사람 만들어준 은인들이다.


그렇게 첫 기획서를 향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덕에 광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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