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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 Jul 15. 2023

일출

새벽, 비바람이 거세게 창을 두드렸다. 난 그 소리가 마치 알람이라도 되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시계는 0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따금 한밤중에 눈뜰 때면 늘 같은 시각이다. '신기하네...' 속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지난 생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시각일지도 모르겠다.


나갈 채비를 했다. 채비라 해봐야 잠옷차림 그대로 휴대폰과 지갑을 챙기고 슬리퍼를 신는 게 전부다.

필로티 구조인 주차장에선 말 그대로 퍼붓듯 내리는 비를 젖지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억수같은 비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이라 비 내리는 거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었다. 고민, 불안, 우울같은 안쓰러운 감정에 시달렸던 요몇달이 통째로 씻겨내려갔으면, 바라면서.

비가 더 많이, 오래 내렸으면 했다.


폭우가 퍼붓는 새카만 밤거리에도 불켜진 곳은 있었다. 흠뻑 젖은채 편의점에 들어선 나를 아르바이트생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표정에 드러난 불안감을 난 알 수 있었다.

"레종블랙 하나 주세요. 라이터도요."

내가 담배를 주문하자 아르바이트생은 '아' 하는  입모양을 하곤 고개를 몇번이나 끄덕였다.


걸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칙칙-

하지만 촘촘하게 떨어지는 빗물이 부싯돌에 스몄는지 불꽃이 튀지 않았다.

한참을 실랑이하다보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시간을 확인하려다 저 멀리 해가 떠오르는 걸 보곤 그만두었다.


끝내 담뱃불을 붙이지 못했다. 붙이지 못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집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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