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42번 접을 수 있다면 그 두께는 무려 44만 킬로미터,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인 40만 킬로미터보다 더 많은 거리다. 고작 종이접기인데 이토록 큰 숫자가 나올 수 있을까. 2의 거듭제곱을 알면 알 수 있다. 먼저 거듭제곱이란 무엇인가. 같은 숫자를 여러 번 곱한 결과를 간단하게 나타낸 것을 말한다. 만약 2를 네 번 곱했다면 숫자 2 오른쪽 위에 네 번 곱한 횟수를 쓴다.
종이접기의 두께는 2의 거듭제곱과 같다. 종이를 한 번 접으면 그 두께는 처음의 2배가 된다. 여기서 한 번 또 접으면 4배 다음은 8배다. 아직까진 작은 숫자로 느껴진다. 2를 두 번 곱한 4와 세 번 곱한 8은 2와 같은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니까. 열 번 접으면 1024라는 네 자리 숫자다. 42번 접으면 어떤가. 4398046511104이며 지구에서부터 달까지 닿고도 남는 거리다. 종이를 51번 접으면 태양까지 갈 수 있다. 81번 접으면 무려 2만7천786광년 거리에 도달하고도 남는데 이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크기와 같다. 이처럼 2의 거듭제곱은 아주 작은 숫자가 얼마나 큰 숫자로 변하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말 한마디는 마치 2의 거듭제곱을 닮았다. 사소해 보여도 엄청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을 테니까.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선생님이 꼭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아빠같이 큰 손으로 자그마한 초콜릿을 건네준 친구가 있었다.
“네가 교실 단상에서 애들 가르칠 날을 기대한다. 넌 왠지 훗날에 김민형 선생님과 비슷하게 되어있을 거 같아.”
난 친구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갤 끄덕이며 초콜릿을 우물거렸다. 김민형 선생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그는 교실 단상에 설 때마다 아이들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그의 이마가 교탁에 닿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그날 이후 난 삶이 무기력해질 때마다 그 친구를 찾아가 걱정을 털어놓았다. 그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친구 : 걱정하지마 재윤아. 다 잘 될 거니까.
나 : 그렇지? 잘되겠지? 아무 일 없겠지?
친구 : 여태까지 잘해왔잖아 넌 너니까.
나 : …….
시간이 흐르고 난 사범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교육 봉사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교실 단상에 올라서는 바로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들이 번쩍 스쳤다. 지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유는 사소하지만 내 영혼을 흔들었던 말 몇 마디 때문이었을 테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라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자 말똥말똥한 눈을 뜬 아이들이 방실거렸다. 행복한 웃음꽃이 교실에 활짝 피어올랐다. 세상은 이렇듯 사소해 보여도 한 사람의 영혼을 흔드는 일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2를 곱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