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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Nov 13. 2021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지나온 흔적은 되돌아볼 수 있지 않던가

나무를 그려보자. 먼저 나무기둥과 큰 나뭇가지를 그리자.

큰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작은 나뭇가지를 그리자.

작은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더 작은 나뭇가지를 그리자.

나무 각각의 부분은 나무 전체의 모양과 닮았다.

  부분의 모양이 전체 모양과 닮아있는 현상을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이라 말한다. 자기 유사성을 지닌 모양은 자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 식물은 잎의 일부분이 전체의 모양과 닮았다. 브로콜리도 부분의 모양이 전체의 모양과 닮았다. 큰 번개 줄기에서 작은 번개 줄기가 갈라져 나오는 번개와 땅 이곳저곳이 갈라진 지진은 모두 자기 유사성을 지닌 모양이다.

  자기 유사성을 지닌 모양이 끝없이 반복되는 도형은 프랙탈(fractal)이다. 프랙탈은 프랑스의 수학자 망델브로가 저술한 《자연의 프랙탈 기하학》에서 처음 등장한다. 스웨덴의 수학자 코흐는 ‘코흐의 눈송이 곡선’이란 프랙탈을 발견했다. 눈송이 곡선은 마치 눈꽃 결정과 매우 유사하다. 코흐의 눈송이 곡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정삼각형을 그린다.
정삼각형의 각 변을 세 등분하고 가운데 부분을 없앤다. 각 변의 없앤 부분 위에 그만큼의 길이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만든다. 이 과정을 ①이라 하자. ②와 같은 결과를 얻는다.
②에서 얻은 6개의 정삼각형 각각에 대하여 ①을 시행하면 ③을 얻는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④와 같이 둘레가 점점 복잡해진 눈꽃 결정의 모양을 갖는다.   



눈송이 곡선은 한 변의 길이가 4/3배씩 증가하는 규칙을 보인다. 처음 정삼각형 한 변의 길이를 1이라 하자. 두 번째 단계에서 도형의 한 변 길이는 얼마일까? 길이가 1/3인 선분이 4개가 있으므로 4/3이다. 세 번째 단계는 어떤가. 길이가 1/9인 선분이 16개가 있으므로 16/9. 4/3을 두 번 곱한 값이다. 각 단계에서 한 변의 길이는 4/3씩 증가하므로 n번째 단계에서 한 변의 길이는 4/3을 n-1번 곱한 값이다. 위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한 변의 길이는 결국 무한대로 발산한다.


  프랙탈은 자기 유사성을 지닌 모양이 끝없이 반복되기에 정확한 모습을 그릴 수 없다. 미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어느 고등학생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 이담에 커서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계속해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해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막막했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겠지.”라고 말하는 것은 시답지 않은 위로 같았다. 억지로 힘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교사를 꿈꾸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과연 죽을 때까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을까. 사범대에 왔지만, 생뚱맞게 작가란 꿈이 덜컥 생기기도 했다. 어쩌면 힘들고 답답한 건 당연하다. 우린 미래의 명확한 모습을 알 수 없으니까.


  프렉탈을 정확히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나조차도 내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나온 흔적은 되돌아볼 수 있지 않던가. 프렉탈의 핵심은 도형이 남긴 흔적을 살피며 자기 유사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코흐의 눈송이 곡선의 길이가 4/3배씩 증가한다는 규칙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 여태까지 남긴 과거의 흔적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마치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을 때 비로소 보였던 풍경처럼 아름다울지도 모르니.


  

  프랙탈을 정확히 그리려고 애쓰기보다 어떤 패턴을 남기는지 파악하는 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보다 내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끝없이 채찍질하기보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토닥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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