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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Aug 21. 2021

내가 바라야 했던 아름다운 속력

우린 언젠가 자취방에 닿을 수 있겠지

 속력은 단위 시간(1초, 1분, 1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어 표시한다. 100m를 20초에 달린 사람의 속력은 100(m)/20(s), 즉 5m/s이다. m(미터)/s(초)는 속력의 단위다. km(킬로미터)/h(시간)도 속력의 단위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대학생 A, B가 있다. 두 학생은 10km나 떨어진 학교에 지각할 위기에 처해있어 서둘러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 정류장에 택시는 한 대뿐이며 아파트로부터 200m 떨어져 있다. 두 학생은 택시를 향해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A는 200m를 달리는 데 25초, B는 50초가 걸린다. A는 B보다 속력이 2배나 더 빠르므로 택시를 먼저 탔다. A는 학교에 제때 도착했고 B는 지각했다.

  다음날에 A, B 모두 또 지각할 위기에 처했다. 택시 정류장에 택시는 한 대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는 데 50초가 걸렸다. A와 B는 모두 지각을 면했고 사이좋게 택시비를 나누었다.


A가 속력을 늦췄기 때문에 함께 달릴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에 돌아오는 길, 난 다리를 다친 동생의 가방을 들어주기 위해 남영역에 들렸다. 동생은 자취방에서 학교까지 10km나 되는 거리를 목발을 짚으며 통학했다. 남영역 출구에서 동생은 절뚝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10월 중순, 쌀쌀한 가을인데 동생의 손끝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난 후다닥 달려가 동생의 책가방을 대신 메었다.

  남영역에서 자취방까지는 대략 500m, 걸어서 7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이다. 동생은 자취방까지 도착하는 데 무려 21분이나 걸렸다. 이 짧은 거리에 동생은 두 번 쉬었다. 숙대입구역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한 번. 남영동 주민 센터 정류장에 있는 의자가 보일 때 두 번이다. 동생은 목발을 내려놓고 헉헉 숨을 골랐다.

    작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생각했다. 사람마다 걷는 속력은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 급히 뛰어가는 사람. 목발을 짚는 사람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사람까지. 고작 500m밖에 안 되는 거리도 속력이 느린 사람은 1.5km처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수학으로 증명되었다.


   사람마다 속력이 이토록 다른데 왜 우린 무조건 빨리 가려고 할까. 뒤처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올해 스물여섯 여전히 난 대학생이다. 주변 친구들은 인턴을 하며 스펙을 쌓고 취업에 성공했다. 직장을 다니며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용돈을 받고 사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졸업 시험에 떨어져 남들보다 늦게 졸업할 거란 두려움.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해 취업에 실패할 거란 두려움.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나쁜 상상들이 파도가 되어 날 덮쳤고 난 이리저리 허우적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마다 속력이 다르듯이 우리의 삶도 분명 그럴 거라고. 빨리 달릴 수 없으면 속력을 조금 줄일 수는 있을 테다. 동생과 함께 걸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는 나 혼자 빨리 가기보단 당신과 함께 멀리 가는 편이 나을 테니.




  “형 이제 집에 가자.” 벤치에서 일어난 동생은 다시 목발을 짚었다. 난 혼자 속삭였다. ‘그래. 같이 걸을까.’ 천천히 걸어도 우린 언젠가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겠지.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늦은 밤 11시, 계절은 쌀쌀한데 내 마음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카카오 브런치 팀이 제 글을 카카오 채널에 소개했습니다.

삶과 수학의 연결을 통해 전하는 위로를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무엇보다 제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신 구독자님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


http://pf.kakao.com/_YYcYV/85754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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