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쳐라!
난 탐정 레이븐의 조수 왓슨. 얼마 전 그리스 해안가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발견했단 소식을 레이븐에게 들었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확실치 않지만, 진실을 알아낼 유력한 단서는 피살자의 몸에서 발견된 배지다. 그것은 피타고라스 학파 회원만 가질 수 있었다. 수상함을 느낀 난 학파 회원으로 위장하고 잠입 수사를 진행했다. 난 그곳에서 이상한 그림을 발견했다. 물음표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단서를 파악하기 위해 하나씩 추리해보자. 우선 사건과 관련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어떤 단체인가. 피타고라스는 학교를 설립하여 수론, 음악, 기하학, 천문학을 가르쳤다. 특히 자연수만을 다룬 수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만물의 근본은 자연수라고 생각했으며 자연수에 특별한 이름을 부여했다. 1은 근원의 수, 2는 여성의 수, 3은 남성의 수, 4는 정의의 수, 5는 남성수와 여성수의 합이므로 결혼의 수, 6은 창조의 수이다. 10은 완전수인데, 처음 네 수의 합이 1+2+3+4=10이기 때문이다.
단서에 주어진 삼각형을 살펴보니 직각삼각형임을 알 수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직각삼각형과 관련된 성질을 발견했다. 직각삼각형의 세 변 a, b, c가 주어졌을 때 c를 빗변으로 하면 다음 그림과 같은관계가 성립한다. 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각삼각형은 이 정리를 만족한다고.
그들은 이 정리를 만족하는 자연수 a, b, c에 이름을 부여했는데 이를 피타고라스의 수라 한다. (3, 4, 5) (5, 12, 13)등등 무수히 많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자연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얼마 전 그리스 시내엔 흥미로운 소문이 퍼졌다. 자연수가 아닌 새로운 숫자를 누군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수년간 쌓아온 “모든 만물은 자연수”라는 철학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였으니까. 학파 측은 사실무근이라 답했으며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 모두 그리스 법정에 고발하기로 선언했다.
내 추리대로면 살인사건의 실마리는 단서에 있는 새로운 숫자에 있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제외한 두 변의 길이가 각각 1일 때 이 빗변의 길이는 도대체 얼마일까? 제곱해서 2로 딱 떨어지는 숫자를 찾아야 한다.
바로 그때 레이븐이 탐정 사무소 문을 열며 헐레벌떡 소리쳤다. “이보게 왓슨! 얼마 전 실종된 히파소스란 수학자. 자네도 알지 않던가? 실종된 시기와 시체가 발견된 시기가 비슷해서 그자의 방안을 수색했는데 이 글을 발견했다네!”
1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더하여 얻는 수를 자연수. 서로 다른 두 자연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을 비(ratio)라고 말하지. 예를 들어 2에 대한 1의 비는 1:2이고 분수로 나타내면 1/2 소수로 나타내면 0.5야. 얼마 전 난 어떤 두 자연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숫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야 말았어. 이 숫자는 1.414213…. 불규칙한 숫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로 1보다는 크고 2보다는 작은 어딘가에 존재해. 제곱해서 2가 되는 숫자 바로 루트 2야. 난 이 사실을 학파 회원들에게 알렸지만 다들 날 보며 미쳤다고 말했어. “네 발견이 틀린 것이야! 모든 만물은 자연수로 이루어져 있어.”라고 말이지. 하지만 난 내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걸세. 설령 내 목숨이 위험하다 할지라도...
“저 레이븐 탐정님?”, “자네 생각도 나랑 똑같겠지?”, “넵..! 아무래도 이 사건은..”, “살인 사건이야.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사람을 죽였어.”
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자연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은 피타고라스학파는 히파소스의 발견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히파소스를 죽여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다. 결국 그는 지중해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의 발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테다.
(무리수는 영어로 irrational number 분수로 나타낼 수 없는 숫자란 의미이다. 이와 달리 유리수는 영어로 rational number 분수로 나타낼 수 있는 숫자란 의미다.)
피타고라스 학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았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 난 마음에 벽을 쌓으며 살았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생각했던 일이 맞아!’라고 말하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의견을 듣지 않고 침묵했던 적도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인격을 죽였다. 나도 피타고라스 학파와 다를 바 없었다. 비록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그래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