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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Nov 20. 2021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

0과 무한대를 함께 표현하는 사랑

  점근선(Asymptote)이란 무한히 뻗어나가는 곡선이 어떤 직선을 향해 한없이 가까워질 때 그 직선을 말한다. 점근선의 핵심은 접근성이며 이를 극한(limit)이라 한다. 극한으로 y=1/x의 그래프를 살펴보면 x축과 y축을 향해 한없이 가까워지는 쌍곡선이다. 이때 x축과 y축은 다른 말로 y=1/x의 점근선이라고 말한다.


  우린 y=1/x의 극한을 통해 두 가지 무한을 볼 수 있다. 한없이 작아지는 무한인 무한소와 한없이 커지는 무한인 무한대다. 무한소는 점점 0에 가까워지고 무한대는 셀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주어진 그림에 분홍색 화살표를 살펴보면 x의 값은 1, 2, 3, 4, … 양의 무한대로 한없이 커지지만 y의 값은 4, 3, 2, 1, … 점점 0에 가까워진다. 초록색 화살표는 x의 값이 –1, -2, -3, -4, … 음의 무한대로 한없이 커질 때 y의 값은 –4, -3, -2, -1, … 점점 0에 가까워진다. 보라색 화살표는 y의 값이 양의 무한대로 향할 때 x의 값은 0에 가까워지며. 노란색 화살표는 y값이 음의 무한대로 향할 때 x의 값은 0에 가까워진다.

   y=1/x의 극한에서 0과 무한대는 서로 일맥상통하다. 숫자 0에 무한대가 숨어 있으며 무한대로 가는 과정에 숫자 0이 숨어 있는 것이다.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춰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0으로 만든다. 그래야 상대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 수 있다.


0과 무한대를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존재할까


  인도에 하루 1.25달러로 살아가는 찬드라반이란 마을이 있다. 2014년 1월 4일, 서울여대 봉사 프로그램 GSL에 지원한 재학생들은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봉사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있다.


  “세 가지가 충격이었어요. 첫째 복수가 터져서 나온 물 때문에 배가 부푼 거죠. 둘째는 가방이었어요. 어떤 아이가 허름한 쌀 포대를 메고 오더니, 그걸 가방이라고 자랑하는 거예요. 마지막은 꿈. 애들이 꿈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더라고요.”


  기독교학과에 재학 중인 두 학생은 찬드라반 아이들에게 꿈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두 학생은 한국 땅에 돌아오자마자 동아리 모집공고를 냈다. “인도 찬드라반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사람을 찾습니다.” 2014년 3월, 모집공고 2개월 만에 예그리나 1기가 탄생했다.


  학회에 따르면 예그리나는 ‘서로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이다. 예그리나는 텀블벅 펀딩으로 찬드라반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을 모았다. 텀블벅 펀딩이란 후원자에게 직접 제작한 에코백, 배지, 물병, 엽서 등을 보내주는 과정을 말한다. 그 돈으로 찬드라반 아이들을 위한 구호 물품을 샀다. 인도에 가는 경비는 각자 알바를 해서 마련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매일 영양간식을 준비했다. 평일에는 힌디어 읽기와 체육 활동 등을 하고 토요일엔 아이들을 씻겨준다고.


그들이 남긴 사진과 글을 통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사랑을 짐작한다. 예그리나는 동아리 설립 4주년을 기념하여 합정역 어느 카페에 자그마한 사진전을 열었다. 나무색 카운터 뒤편에는 10평 남짓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그들이 남긴 사진과 글을 전시했다.


  

  찬드라반 아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다. 신발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난 돌이 촘촘히 박힌 흙바닥을 맨발로 걸었다. 아이들의 발목은 검게 그을렸고 발바닥은 여기저기 살이 부르텄다. 그런데 한 대학생이 아이의 더러워진 발을 맨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학생이 쓴 글을 가져왔다.


  진두랑 놀다가 조금 까져있는 진두의 발을 봤다. 진두를 끌어안고 응급 상자 쪽으로 데려갔다. 진두의 발바닥을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돌멩이가 박혀있는 흙바닥은 진두의 발꿈치를 딱딱하게 무뎌지게 했다. 진두의 발꿈치는 너무 건조해서 조금이라도 긁히면 피가 새어 나올 듯하다. 발꿈치 틈 사이에는 작은 나뭇가지가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진두, 그 사랑스러운 아이의 발이 내 손에 닿았을 때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급히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높이 올려보아도 눈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애써 진두의 발을 만지작거리며 진두의 눈을 마주했을 때 난 괜찮다며 날 위로하듯이 예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모여들어 나를 감싸고 노래를 불렀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는 노래 같았다. 남자애들은 나를 놀리면서 “아리~크리아 노노 아리!! 쓰읍 쓰읍”라고 말했다. 여자애들은 그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줬다. 난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이 피식하고 터져버렸다. 내가 웃자 짓궂은 남자애들은 소리 높여 더 놀리기 시작했고 눈물을 닦아주던 여자애들도 함께 웃었다.




  0과 무한대를 함께 표현할 수 없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자신을 한없이 낮춘 자리에서 무한한 사랑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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