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낭독, 몸으로 배우다
형제들! 이제 건강한 몸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그 소리가 훨씬 더 순수하고 훨씬 더 정직한 소리야.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p.84.
인간의 몸이 그 자체로 하나의 근사한 악기가 된다는 게 너무 멋졌다. 박정현이나 권진아, 악뮤 수현이나 조수미처럼 노래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자기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듣는 사람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노래에 빠져들게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 맨몸으로 만들어 낸 음악 예술은 아름다웠다. 아무리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 내던져져도 몸만 있으면 노래는 할 수 있으니까 내 몸으로 어둠을 걷어내고 고통은 만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십 육 년째 국어 교사로 해마다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수업을 하면서 주로 정신 에너지를 많이 쓰며 살고 있다. 퇴직하면 머리보다는 몸 쓰는 일을 더 비중 있게 하며 단순하게 살아보겠노라는 구상을 했다. 퇴직까지 기다릴 거 없이 할 수 있는 건 바로 하면 되잖아? 생각의 전환 후 시도해 본 것 중 보컬 트레이닝이 있다. 23년 가을, 당근 마켓에 올라온 홍보를 보고 무료 상담을 다녀온 후 보컬 트레이닝 주 1회 50분 수업으로 기본 4회권을 끊었다.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 건반과 편집기, 스탠딩 마이크와 헤드셋이 구비된 녹음실에 들어서자 긴장됐다. 젊은 남자 트레이너 앞에서 일절 잡소리가 없는 조용한 방에서 노래를 하려니 목소리를 내는 일이 너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내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찾고 싶었다. 나는 노래를 못하지만 목소리에 맞는 노래 몇 개는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첫날은 트레이너가 시간을 꽉 채워 이론 설명만 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내 집중했지만 뒷얘기를 들으면서 앞 얘기는 잊혔다. 내가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노래를 즐기게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심각한 분위기가 무거웠다. 원하는 만큼 높은음을 내려면 성대를 닫아야 한다 했다. 손가락 끝을 귓바퀴 위쪽 끝에 댄 채 소리를 냈을 때 머리가 찡~하고 울리는 느낌이 나면 성공이다. 가수들이 음반 녹음할 때 왜 귀에 손을 갖다 대는지 비밀이 풀렸다. 처음엔 무슨 느낌인지 몰랐다가 팔꿈치 각도를 바꿔가며 소리를 내다보면 머리를 울리는 찡하는 그 느낌이 온다. 소리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다음 주에 권진아의 ‘위로’(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를 부를 테니 많이 듣고 오라고 했다. 숙제를 하려고 시간 날 때마다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더니 일상에 음악이 들어와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노래를 감상하는 것과 박자와 음정에 맞게 내가 직접 부르는 것은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했다. 복근에 힘을 준 채 숨을 내쉬면서 노래를 하는 복식호흡. 폐활량이 있어야 높은음을 편안하게 부를 수 있다. 어느 가락에서 호흡을 하느냐에 따라 노래의 맛이 달랐다. 힘을 주는 부분과 힘을 빼는 부분의 조화. 권진아의 ‘위로’를 들어 본다. ‘나의 어제에 그대가 있고, 나의 오늘에 그대가 있고, 나의 내일에 그대가 있다’에서 ‘제, 늘, 일’을 힘을 뺀 채로 강조하면서 애절한 느낌이 살고, ‘있고, 있고, 있다’에 변주를 주면서 노래의 맛을 살려주는 식이다. 진성과 가성을 잘 구사하는 가수가 권진아라고 했다. 내가 부르기엔 너무 오글거렸다.
세 번째 시간쯤 되자 적응이 되어 부끄러움도 어색함도 줄어들고 목소리가 안정되게 나왔다. 트레이너는 내가 기교를 전혀 쓰지 않는 목소리라 동요를 잘 부를 거 같다고 했다. 힘을 줬다 뺐다 하며 부르는 것은 초보 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멋 부리기라는 생각에 낯간지러워서 기교를 부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더니 그 부분을 딱 짚어 말한 거다.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 시작한 건데 어색하다고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무슨 변화가 있겠어.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용기 내서 맛을 살려봐야지’ 결심했는데 트레이너에게 개인 사정이 생기면서 아쉽게도 레슨이 중단됐다. 내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찾지는 못했지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이후에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을 더 자주 하게 되어 내 일상이 풍요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마침 그즈음 ‘싱어게인 3’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자기만의 목소리로 그 노래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매주의 시간에 폭 빠져 살았다.
24년에는 우연한 기회에 낭독을 배우게 됐다. 낭독은 단순히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음독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지도해 주는 성우님은 ‘낭독은 영혼의 울림’이라고 했다. 보컬과 낭독은 호흡이 중요하고, 노랫말이나 책 내용에 따라 강약 조절이나 정서가 목소리에 실린다는 점에서 같았다. 낭독은 라디오 극장과는 또 달라서 배우처럼 대사를 연기톤으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긴장이 덜했다. 책에 몰입만 한다면 내 목소리 그대로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호흡과 끊어 읽기(포즈), 문장 변주에 신경을 쓰면 됐다. 쉬운 건 아니어도 보컬보다는 낭독이 내 몸에 편안했다.
첫날 피드백이 인상 깊었다. 내가 호흡이 빠르다면서 마침표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떼어 다음 문장을 읽으라고 했다. 그래야 입안에 침이 마르지 않아 오래 읽어도 힘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몸을 아껴주라고. 내 낭독의 첫 청자는 나 자신이므로 나를 먼저 사랑해 주라는 말. 낭독 수업에서 들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더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뭉클했다.
읽는 사람은 글이 보이지만 듣는 이는 문장이 내레이션인지, 대화인지 모르니까 포즈를 두어 책 속 인물로 자아 체인지를 해야 한다는 말은 듣는 사람을 상정한 낭독이 묵독이나 음독과 차별되는 점이었다. 책에 띄어 읽어야 할 부분을 표시하지 말고 몸의 감각으로 읽어야 더디 가도 자기 실력이 된다는 말도 좋았다. 낭독 책은 마르크 로제의 장편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인데 305쪽 본문 중 중간쯤 읽으니 수강생마다 더 자연스럽게 자신과 일체화되는 책 속 인물이 생겼다. 객관적 거리감이 있어 두 중심인물을 다 품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11명의 수강생이 줌(ZOOM)에 접속해서 수업을 받는데 11인은 11색의 목소리와 정서를 갖고 있었다.
보컬과 낭독에서 공통적으로 내 심리가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게 무엇보다 신기했다. 어색하면 말투가 퉁명스러워지는 나는 ‘애교 섞인 어조’로 말하는 여자 대사를 읽었더니 성우님이 ‘너무 퉁명스러워요.’ 했고. 엄마와 아빠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주인공 할아버지에게 깊이 감정이입이 되어 내용에 폭 빠져서 낭독할 때는 ‘어떤 스킬도 없이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진성이라 책 내용이 그대로 잘 들리게 읽는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스킬 쓰지 않고 꾸밈없는 건 보컬에서나 낭독에서나 똑같았다.
목소리에는 긴장감과 자신감, 자기혐오(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듣기 괴로워하는 수강생이 여럿 있었다)와 자기 사랑, 책 속 인물에 대한 흥미와 거리감이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목소리를 통해 투명하게 보인다는 게 당연하고도 신기했다. 정직한 목소리들이 전문 성우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생긴 변화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낭독 수업의 재미에 빠져 있다. 자기 목소리를 직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낭독 후기가 몽글몽글하다. 보컬을 배울 때도 그랬지만 몸으로 하는 것에는 몰입의 즐거움이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현재에 있는 충만한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