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22일째
10월 23일 일요일 맑음
뭘 해도 제대로 깔끔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하루가 흘러간 기분이다.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꽤나 빼곡하게 일정이 들어차 있던 날이었다.
우선 장인어른 생신을 맞이해 점심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점심 직후에 다른 일정이 미리 잡혀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가족 모임이 추가되면서 시간이 애매해졌다. 마침 형님이 가자고 제안한 식당이 10시 30분에 오픈하는데 예약도 받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맛집이라 그곳에 11시경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조금 늦었지만 먼저 온 일행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도 미리 해두어 도착하자마자 먹을 수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이 식당은 생일상으로 가족 모임을 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번잡한 곳이었다. 거기다 우리 애들이 번갈아가며 보채는 통에 그나마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하고 금세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일정으로 떠나기 직전에 황급히 장인어른께 미리 준비한 상품권 봉투를 건네드리는 걸로 어설픈 가족 모임은 끝이 났다.
그러고 곧장 간 곳은 하남 스타필드였다. 첫째와 함께 신세계 아카데미에서 '누리호 프라모델 만들기' 수업을 신청해놨기 때문이다. 점심도 일찌감치 먹었고 식당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비교적 여유롭게 도착했다. 우리 첫째와 비슷한 또래의 5~6세 아이들이 대여섯 명 정도 있었다. 재료비 13000원을 냈고 곧 강의가 시작됐는데 5살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대체 이런 애들한테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우주선 발전의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누리호 발사 영상을 보면서 원리를 설명해줄 때는 첫째의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른이라면 5분이면 만들 듯한 프라모델을 아이가 최대한 직접 만들 수 있게 해주다 보니 수업 시간이 금방 끝났다. 바로 집에 가긴 뭐하지만 딱히 살 건 없어서 넷이서 쇼핑몰을 뚜렷한 목적 없이 거닐다가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예매를 위해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오니 4시에 열리는 플레이오프 3차전 예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날씨도 춥고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해서 늦게 끝나는 야구 경기를 5살 아이와 직관하려면 실내인 고척돔에서 하는 경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 2차전은 과감하게 스킵하고 3, 4차전 예매에 도전했는데 완전히 허탕이었다. 일단 예매 경쟁률은 정각에 들어가도 대기 순번이 10000번이 넘어갔다. 2시에 열리는 1차전부터 모두 도전해 자동배정으로 아무 자리나 골라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3차전에 어느 자리를 할지 고민한 것은 바보짓이었다. 어제까지 열렸던 준플레이오프는 5경기 다 매진이 안됐는데 LG트윈스처럼 인기 구단을 응원하는 것이 이럴 땐 단점이다.
결국 뭔가 어설픈 가족 모임과 쇼핑몰 방문을 하고 야구 예매는 완전 실패였으며, 저녁식사도 대충 어제 먹다 남은 족발이랑 회무침이 있길래 소면을 삶아 회무침을 유사 비빔국수로 만들어 먹은 게 전부다. 그래도 이렇게 영 어설프게 일요일을 마감해도 별로 괜찮은 이유는 내가 휴직 중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일 출근하는데 이런 하루를 보냈다면 글쎄, 아마도 기분이 분명 저기압이 되어 있을 것은 분명하다. 일단 오늘 밤에 아내와 드라마를 하나 보면서 플레이오프 취소표를 틈틈이 노려봐야겠다. 실패하면 한국시리즈 때 가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