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타투를 받은것도 아니고.
시작은 충동적이었다.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이
손글씨를 부탁해왔다.
타투를 받고 싶어서 그런다고.
타투.. 내가 배워버려서 해줄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티비 보다가 졸고 있는 남편을 찰싹치며 말했다.
"내가 타투를 배워야겠어!!"
다음날 아침을 먹으면서 한번 더 외쳤다.
"타투, 타투를 배울거야. 바로 그거야!"
남편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 어제밤 그게... 꿈이 아니었어?????"
꿈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나는 타투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일단 난 타투도 하나도 없고
주변에 친구들도 타투가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친구가 23살에 허리춤에 거미 타투를 받았다가
시집갈때 레이저를 10번씩 해가며 지우는 걸 보고
역시 타투는 하면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던 기억.
직장 동료가 타투를 많이 하는걸 보면서
부모님이 아무말 안하나? 실눈 뜨고 바라본 기억.
그런 내가 갑자기 타투이스트가 되겠다니
모두들 엉뚱하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에는 정말 좋은 특급 아이디어였다.
풀타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나선지 4년차.
바쁘게 그림을 그려왔지만
다른 사람의 손이 되어주는
일러스트를 주로 그려오다 보니
나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지 좀 되었다.
좋아하는 그림일을 계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창의적인 일은 빠른 물살안에 떠 있는것 같아서
안정이라든가 머문다는 개념이 없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진화하지 않으면
물살에 쓸려 하류로 내려가는
두가지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와 순수미술의 세계로 뛰어들기에는
나는 상업적 그림 세계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사회에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도전적 작가정신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어느 방향으로 내 그림을 끌고갈 것이냐
그런 고민이 한참일 즈음
타투를 떠올리니 바로 이거야, 싶었다.
이제 아티스트라는 명찰을 정식으로 달고
예술가들의 빌딩 입주 자격을 겨우 얻었다면
나는 고층의 넓고 대리석 바닥 오피스보다는
지하실에서 Speak Easy Bar 를 갖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타투만큼 잘 어울리는
간판은 다시 없었다.
결정도 빨리하고 발도 빠른것이
특징인 나는 지체없이 움직였다.
바로 타투용품들을 구입하고
살에다가 바늘로 그림그리는 방법을
가르쳐줄 곳을 찾아냈다.
시간을 초 단위로 나누어
배우는 것에 전부 쏟아부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
나를 받아줄 타투샵을 찾아내고
시험을 쳐서 타투 아티스트 자격증도 땄다.
일이 늘 이렇듯 술술 풀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다.
그렇게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내면 된다.
남보다 모든게 수월한 사람들
일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들은
때마다 행운이 찾아들어서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되도록
상황을 내 편으로 만들줄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들을 꼬여내어
타투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타투를 사람에게 하기로
약속이 잡힌 날
새벽에 눈이 떠지고
온종일 피가 빠르게 도는게
느껴졌다.
기분이 붕 떠있고
집중을 할수가 없었다.
도통 긴장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내가
온종일 긴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바늘에 잉크를 묻혀
사람 팔에 찌르고
긁어 그림을 그리면서
묘하게 들뜬 긴장이 가라앉고
머리가 냉정함을 되찾았다.
차분함을 되찾은 후
차가운 흥분감이 지릿하고 찾아왔다.
끝내고 난 후에도
흥분은 계속해서 커져갔다.
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웃으면서 문 밖으로 나간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녀 팔 안쪽에 남긴
나의 작은 산호초 그림은
그녀와 생명을 나누고 살아갈 것이다.
그녀의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이미지와 의미를 남긴다는 것.
또 내 그림에 생명을 넣어줄 수 있다는 것.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숨을 쉬고 여행을 하고
노화하고,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는 걸
깨우친 그 날 이후
내 몸과 마음은 타투에 정말 푹 빠져버렸다.
이렇게 멋진 form of Art 에 대해
선입견이 가득한 것이 안타까웠다.
갱, 야쿠자, 건달들이 하는 것
범죄자들의 표시
폭력적인 사람들의 유니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타투
부족시대까지 거슬러가
가족과 자기 종족을 지키기 위해
강해보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문신의 시초라는 것은 맞지만
모든 예술의 시초가
인간의 본능이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어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변화했듯이
타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폭력적인 표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타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절세미남미녀도
흔순이 흔남이도
공평히 단 하나만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죽으면 같이 묻혀
함께 소멸하는
예뻐도 미워도
사랑하고 싶고
사랑해야 하는
하나뿐인 나의 몸.
그곳에
인생에서 의미있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새기어
생명을 주고 삶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줄 타투를 만나게 된
올해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내가 타투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새로이 알게된 것들,
내가 하고 싶은 그림과 타투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브런치에도 종종 나누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