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려 Oct 19. 2022

저요저요


도예 공방 선생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늦은 여름휴가가 즐거우셨나, 아이 재롱에 행복하신가, 하지만 그날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물었다.

"선생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선생님이 흙을 붙잡고 낑낑대는 내 옆에 앉으시더니 나 대신 흙을 달래면서 말씀하셨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됐거든요."


수업 전날 선생님은 중증 장애우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수업이었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단다. 기특하고 고마운데 한 학생이 선생님 손을 꼭 잡더란다.

"그리고 학생이 저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선생님 눈망울 속에서 그 학생을 본 것 같았다. 깊은 눈망울 속에서 말로 풀어낼 수 없는 촉촉함이 번졌다.

나와 선생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주 보고 있던 눈을 돌렸다.

"참 뿌듯하셨겠어요."

"네. 그래서 용기가 나더라고요."

"용기요?"

"오는 길에 제가 다니던 학교에 전화했어요. 수업하고 싶다고."


선생님이 다니던 학교는 학생들이 줄고 줄어서 지금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합쳐서 학생 수가 18 명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도자기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고 너무도 당연하게 그 학교 선생님들은 환영을 했다.

"선생님 근데 그게 왜 용기가 필요하셨어요? 선생님이 가신다고 하면 다 좋아할 텐데요? 도자기 같은 재능 기부는 많지 않을 텐데요?"


선생님은 이전에도 다른 학교로 수업을 다니시곤 했다.

한 번은 친구가 미술 선생님이 되었다고 친구를 위해 특별 수업을 준비하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초등학교 아이들이 좋아할 색들을 섞어 흙을 치댔다. 어깨가 아프다면서도 웃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제 모교라서 그런가 봐요. "

모교…,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선생님의 기억 속에는 깊이 새겨져 있을 모교였다.

나도 모교라고 하니 날 사랑해주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날 때처럼  짠 기운이 올라왔다. 가만히 선생님을 쳐다봤다.

"아이들에게 이런 직업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선생님은 흙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부러워졌다. 이번엔 내가 흙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이들한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그리고 며칠 후, 수업 준비에 흥이 난 선생님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저도 하고 싶어요."

"네?"

"제가 선생님께 짐이 아니라 도움이 될 때가 오면 저도 가고 싶어요. 장애우들 있는 학교에…."


저도 하고 싶어요


길과 길이 만나면

세상이 넓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새로운 우주가 생긴단다


그 길 한 자락에서 이정표가 되고 싶어요

그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별이 될래요


그럼 먼저 손을 높이 들고 말해야 한단다

하고 싶은 사람? 묻지 않아도 말해야 돼


저요저요,


                - 소려의 못된 시 '저도 하고 싶어요'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되었다.

이곳에 와 중심 없이 헤매는 떠돌이 별 같았는데 저 멀리 가운데에서 나를 잡아 주고 있던 구심력을 느끼게 되었다.


물레를 돌릴 때의 목표가 달라졌다.

‘재밌게 돌리고 많이 만들자’에서

‘재밌게 돌리고 제대로 배우자’로.

제대로 배워서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졌다. 아니,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길 바라게 되었다.

이전 18화 추임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